‘분노의 정치’와 ‘대립의 정치’에 빠진 우리

지금 저희는 가장 우려했던 ‘치킨게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치킨게임이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을 말합니다. 이 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입니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됩니다. 즉,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이 바로 치킨게임입니다.

지금 강원도당은 치킨게임처럼 분노의 정치, 대립의 정치만 있을 뿐 화해의 정치, 상생의 정치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화해의 정치로의 전환은 불가능할까요? 때 늦은 문제제기이지만 다시 성찰해 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원인(1) : 길씨의 성찰과 사죄, 아직 부족합니다!

작년 5월 바로 현 문제의 시발점인 ‘폭력사태’가 있었습니다. 길님은 분명 크나큰 잘못을 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길씨의 신씨와 당원에 대한 신속한 석고대죄만이 화해의 정치로 가는 첫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길씨는 신속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화해의 정치로 가는 기회는 후보등록 이전 신씨와 당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낙석운동 측과 설득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합니다. 역시 이 부분에서 길씨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후보등록 이후 길씨가 신씨에 사죄한 것은 뒤늦었지만 그나마 일말의 화해의 정치로 갈 수 있는 단초였습니다. 신씨도 길씨와 화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길씨는 두 번째 사과문에서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신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신씨가 극단으로 치닫게 하였습니다. 그나마 길씨를 이해하려는 일부 사람에게도 길씨의 성찰의 부족을 느끼게 하였거나 문제해결 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길씨의 자질을 문제삼는 대목이었습니다.

길씨가 진정 강원도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길씨는 진정한 성찰과 사죄를 해야 합니다. 그 성찰과 사죄의 방법이 무엇인지 길씨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신속한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인(2) : 낙선운동 그룹의 태도는 경직적입니다!

폭력과 인권의 문제에 감수성이 높은 낙선운동 그룹의 적극적인 행동은 그 자체로 용기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길씨에 대한 똘레랑스(관용)를 주장할 때,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앵똘레랑스(불관용)에 대해서는 앵똘레랑스로 맞선다”는 태도는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치열한 노력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과 노력 속에서 한번쯤은 길씨의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실을 밝히고 폭력의 재발을 막는 것만큼이나 그 바탕위에서 화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길씨는 분명 폭력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만, 이후 “길씨에 대응하는 피해자의 행위가 어디까지 정당했는가?”라는 문제는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낙선운동 측은 ①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고, ② 피해자가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상황이고, ③ 양자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강자의 위치에, 피해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명백하기에, 피해자의 행동은 불가피했거나 정당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 신씨의 강한 반응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폭력사태에 대한 해명을 넘어서서 길씨의 인생을 ‘마초’의 삶으로 내모는 것은 또 다른 언어폭력입니다. 이 부분까지도 피해자의 불가피한 또는 정당한 행위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낙선운동 측에서 볼 때, 이런 문제제기는 최초의 ‘폭력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가 숨을 곳을 주고, 피해자에게 이차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차 책임이 길씨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길씨 또한 크나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길씨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길씨의 사죄가 지연되었던 것도 길씨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신씨를 보듬는 것의 10분의 1이라도 길씨를 생각하는 것, 길씨가 치킨게임에 빠지지 않고 뒷걸음질 칠 여유를 주는 것, 이것이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낙선운동 측과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즉 양비론자로 불리는 이들)을 길씨를 비호하는 자로 모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양비론이라 하여 반드시 폭력사태를 눈감고 피해자에게 이차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양비론은 역지사지의 태도일 수 있고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일수도 있습니다. 역시 이들의 주장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낙선운동 측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경직성’이 현재의 상황을 치유하지 못하는 한 원인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낙선운동 측의 더 깊은 성찰과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원인(3) : 우리는 화해의 정치에 너무 취약합니다!

당시 길씨와 신씨, 도당, 진상위원회 등이 함께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화해의 정치’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즉 폭력행위에 대한 길씨의 ‘강한’ 사과와 성찰, 길씨에 과잉대응한 신씨의 ‘약한’ 사과와 성찰, 그리고 폭력사태의 재발방지 및 혁신과 화해를 위한 도당의 노력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깔끔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했습니다. 역시 이 부분에서 도당과 저희 모두의 성찰 부족과 정치적 역량의 미숙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낙선운동 측이 주장하듯, 우리는 ‘폭력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분노와 대립의 정치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학생운동 시절, 민노당 시절부터 뿌리깊게 내려오는 ‘적과 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적에 대한 분노와 대립을 도덕적 순수성과 진정한 운동으로 간주하는 관성에 다름아니라고 봅니다. 저희는 정당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습니다. 정당은 대립과 투쟁만큼이나 조정과 타협, 화해가 중요한 덕목이자 정치기술로 인정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조정과 화해의 정치가 너무도 부족합니다.

원인(4) : 도당의 정치역량, 너무 취약합니다!

길씨의 때이른 복귀에는 도당의 ‘취약한 정치역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길씨의 때이른 복귀를 권유했던 이들은 도당이 현 상황으로 가서는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는 공멸감이 있었습니다. 현 도당위원장과 집행간부들이 있지만 지역정치에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 상황을 풀 수 있는 차선이 길씨였을 겁니다. 물론 사죄와 화해의 정치가 선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때 이른 복귀 권유가 정당했는지는 충분히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민노당 탈당 이후 새로운 대중정당으로 탄생해야 할 시점에서 그 일을 해야할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당의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관망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 전체적으로 정치역량이 미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당이라기보다는 써클에 가까웠습니다. 아직도 이 상황을 풀어나갈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게다가 현재의 상처는 그 가능성을 더욱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분노의 정치에서 화해의 정치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분노와 대립의 정치만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치킨게임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입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에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상황에 빠지는 듯합니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면 과연 비겁자 또는 정치적 낙오자가 되는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 더 많은 상처, 더 많은 비겁자와 낙오자를 양산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서는 비겁자가 진정 용기있는 자가 아닐까요?

우리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함께 한 발씩 물러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길씨의 진정한 사죄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씨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낙선운동 그룹은 역지사지의 태도와 유연성으로 길씨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합니다. 도당 집행부와 한재천 선생님과 같은 도덕적 지도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실을 밝히고 화해할 수 있도록 당원 전체의 자기성찰, 어느 누구보다도 상처를 입은 당사자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아낌없는 애정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작성일 : 2009-03-26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