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두 개의 그림이 있다면 내 시선은 현실이라는 그림에 더 쏠릴 것 같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상을 꿈꾸는 사람에 속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막연한 이상을 쫒지는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으로는 단 1분 만에 건설할 수 있지만, 단 1초 만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현실은 계속된다. 이상이라는 것이 그렇고,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부질없거나 한심할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집단적 이상을 꿈꿀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부조리하고 부당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미래를 제약하는 조건으로서, 또 미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양면적이기에, 현실주의자인 나는 현실을 중시한다.

  정치행위는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줄이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사람들은 어떤 수준이든 이상을 품을 수밖에 없다. 현실이 고통이고 억압이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꿈꿀 수밖에.


  앞으로 한국사회가 다수의 구성원들에게 암담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현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일당독재는 가능하다. 선거라는 규칙을 통해 행정부, 의회, 지방정부 모든 권력을 일당이 독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논리와 주장으로 반대자들을 설득할 것인지, 또 반대자들의 타당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을 지의 여부 등 권력행사의 실질적 정당성을 갖췄는가가 진정한 민주주의 가늠자이다. 불행한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에게 과연 그러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이다. 견제 받지 않는 일방적인 권력에게 부정부패, 자원낭비, 이권독점과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과 반목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미 민주노동당에서 확인했다.

 
 더욱 암담한 것은 대안적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차별적 정체성을 갖는 정치세력, 즉, 한국사회 80%이상의 절대다수의 생존권적 이익을 당파적으로 대변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심지어 자신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민주노동당은 광주항쟁과 다를 바 없는 티벳민중의 항쟁에 대해 미국의 개입이라며 외면하거나 북한인권에 상대주의적 관점을 들이대며 극우적 감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 진보를 ‘참칭’하고 있다. 진보가 진보일 수 있는 것은 기득권이 없거나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득권층의 부조리나 모순을 비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 입으로라도 말이다. 북한독재세력의 기득권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한 진보정당일 수 없다.

  우리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쉬어갈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어야 한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캄캄한 세상에 한 줄기 불빛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등대가 있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정당이 있어야 한다. 진보신당이 한 그루 푸르른 나무로, 막막한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등대로, 그렇게 힘겨운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성일 : 2008-04-04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