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분당" 문제와 관련하여 당 내의 급진적인 의견 그룹 <다함께>는 "분당론의 본질이 당 우경화 기도"라고 하여 강력한 반대 의사를 포명했습니다 (자세한 자료를 그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alltogether.or.kr ).

글쎄, <다함께> 동지들의 우려를 이해못할 것은 아니지요. 실제 소위 "평등파"의 지도자 중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거의 이상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급진파에 대해 상당한 거리를 두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체로 이 분들은 유럽에서 사민주의 정권하에서 살지 않으셨고, 집권 세력으로 성장한 사민주의자들이 사실 얼마나 보수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권위화, 관료화되는지 목격하실 기회가 적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진보"로서 수명을 거의 다한 "사민주의"를 "새로운 사상 상품"처럼 홍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등파" 일부 지도세력의 "사민주의"에 대한 지나친 평가와 무관하게 저는 새 진보정당이 꼭 우경화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오히려 급진화될 확률이 더 크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한 번 오늘날의 한계레 신문을 예로 들오보지요. 한겨레신문은 원래 '급진'입니까? 애당초에는 "진보적 민족주의" 색채가 강했던 언론이었고, 지금은 "자유주의 좌파"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굳이 편집부에 들어가서 고함을 치르고 난동을 부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지난 대선 때에 민노당에 대해 충분히 보도하지 않았다고 얼마든지 불만을 가질 만도 합니다. 충분한 보도를 하지 않은 (못한) 이유들이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한겨레 신문의 독자층과 민노당의 고정 지지층이 완전히 겹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한겨레를 보는 자유주의 지향의 교수들이 많은 반면, 한겨레를 안보는 노조활동가들이 꽤 많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꽤 "얌전한" 한겨레는 지금 삼성 재벌로부터 유례없는 "광고 탄압"을 벌써 거의 석달째 받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안티삼성 켐페인을 한 것도 아니고, 삼성제품의 불매 운동을 선동한 것도 아닌데, 단지 삼상의 온갖 비리와 비행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보도를 해왔다는 것은 화근이 된 것이지요. "상식"을 지킨 것은, "상식"이 애당초 없는 사회에서 벌써 "주류와의 갈등"을 의미합니다.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나 단체는, 본인이 원하지 않은데도 벌써 "반란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곳은 대한민국입니다.

새 진보정당의 문제로 돌아가지요. 이 정당의 잠재적 지지층은 누굽니까? 삼성이 책임이 적어도 절반 이상이 되는 사고로 생계를 빼앗긴 태안반도의 어민, FTA로 곧 박살날 농민, "대운하"와 같은 망상적 거대 프로젝트 때문에 자신이 가꾸는 땅을 떠나야 할 소작민, 이제 곧 닥칠 세계 공황의 여파로 임금 동결 내지 인하 압력을 곧 받을 제조업 노동자 등등입니다.

새 정당의 지도자가 될 사람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꽤나 보수적인 지향의 분들도 계실 테고, 그들을 위해 표를 던질 사람들 중에서도 아마도 실제로 성향이 꽤나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의 무조건적 친재벌주의와 무리한 토건 계획으로 생계가 무너질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급진화되게 돼 있고, 이들을 대표할 정당도 - 그 지도자들이 뭘 생각하든간에 - 표를 받자면 어느 정도 급진화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날이 갈수록 심화될 위기적 "상황"의 문제입니다. 사실, <다함께>가 노동계급을 대표할 새로운 정당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는, 이를 보다 급진적 방향으로 가게끔 도와주는 "등에"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급진적 소수가 계속 제 노릇을 하자면, 그 소수를 포용할 수 있는 계급적인 대중적 정당부터 필요하지 않은가요?

* 출처 : 박노자의 글방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1378

작성일 : 2008-03-05 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