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사회적 경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엄형식 동지가 글을 보내 왔습니다. "술 한잔 나누면서 안주삼아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어 봅니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
아직은 짧은 불어이지만, 몇 개월 동안 이곳 벨기에에서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느낀 것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 특히 관련 연합체, 지원기관, 지자체 등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한국말로 번역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설명을 하면 어떤 말인지는 알 수 있지만, 한 마디로 번역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지요.
먼저, valorisatio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에서는 ‘더 높은 가치를 줌’이라고 해석을 하는데요, ‘다시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revalorisation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도 사회적경제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단어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복지국가를 경험하면서 ‘국가’와 ‘시장’만을 사회의 중심축으로 바라보았던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또는 제3섹터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 운동을 하는 진영에서는 사회적경제 영역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들이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 즉 valorisation으로 표현됩니다.
사회적경제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들
사람들에게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인지시키려면, 일단 사회적경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져야겠지요. 이를 위해서 동반되는 것이 대중적 개념정의, 다양한 통계개발, 모범사례에 대한 홍보, 객관적 성과지표 개발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쉽게 인식되도록 만드는 노력들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visibilité로 표현됩니다. ‘눈에 보임’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대중들이 사회적경제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사회적경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에 대해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 북부의 릴 시에서는 지역의 사회적경제연합조직이 한 고등학교와 함께 ‘사회적경제주간’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주간 동안, 학생들은 민간단체를 만드는 경험을 하고, 공정무역과 로컬푸드를 통한 점심을 먹게 되고,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학생들은 아무래도 사회에 나가서 사회적경제라는 영역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겠지요. 이런 활동은 sensibilisation, 사전적인 의미로는 ‘(사람의 마음․여론 따위를) 예민하게 만들기, 관심을 갖게 만들기’라고 합니다.
경험과 자산이 공유되고 좀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
사회적경제에 대한 외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더욱 강화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경험들과 자산들이 공유되고, 활동이 좀더 체계적이 발전하고, 좀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겠지요. 이런 활동들을 capitalisation, 즉 자본화라고 합니다. 자본화는 비단 물질적인 자본을 확보한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경험, 정보, 네트워크를 자본/자산이 될 수 있도록 체계화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valorisation, visibilité, sensibilisation, capitalisation. 이 네 표현은 운동으로서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전략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라는 것은 새로운 조직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부문을 재정의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서 그 부문이 새로운 또는 재인식된 사회적 행위자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사회적경제 조직들, 특히 연합체와 지원기관들이 당면한 실천에 집중하면서도, 이러한 개념이 보여주듯이 보다 큰 판을 만들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서 아직까지 시작단계인 한국의 사회적경제 영역에 시사점을 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도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인데, 이쪽에서는 조금 더 폼나게 정리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간혹 연합체나 지원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 일을 하고, 소속 단체나 지원대상 조직들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막상 스스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분명한 소명의식을 못 가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현장으로 가야지’라는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런 개념들을 잘 살펴보면, 연합체나 지원기관에서 하는 일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진 전문화된 영역으로 자리잡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혹시라도 불어권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견학을 오실 때는, 이 단어들을 숙지하고 오세요. 이 표현들을 한국말로 설명해버리면 표현이 가지고 있는 맛이 떨어지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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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짧은 불어이지만, 몇 개월 동안 이곳 벨기에에서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느낀 것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 특히 관련 연합체, 지원기관, 지자체 등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한국말로 번역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설명을 하면 어떤 말인지는 알 수 있지만, 한 마디로 번역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