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일요일) 오후1시부터 서울에서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가 있었다. 가야할지 말아야 할 지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토요일 오후에 상규형에게 전화가 왔다. 긴 일요일, 잠을 자던 책을 읽던 할 게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안 갈수도 없어 함께 하기로 했다. 이런 것이 공명심이던가? 그러나 내가 들어도 갈수록 촌스러워지는 그 이름...

  결성대회 장소는 효창운동장 옆 백범기념관이었다. 효창운동장하면 KBS스포츠의 용가리배(?)고교야구경기가 연상됐는데, 높게 솟은 야구장 조명탑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또 정치가 민초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그 시절 대중집회 장소로도 유명하지 않았나 싶었다.

  운동장을 빼곡히 메운 것도 모자라 담벼락 위까지 올라서 열변을 토해내는 김구, 여운형, 김대중 등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무수한 군중들의 눈빛이 흑백사진처럼 스쳐갔다. 이 곳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을 준비한다? 도대체 인간사회에서 정치란 무엇인지...


  긴박한 총선일정에도 성찰은 지속되어야...

  먼저 원탁회의가 열렸다. 각 부문 대표들이 진보신당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는 시간으로 보였다. 회의장의 따뜻한 기운과 늦은 잠으로 몸이 노곤해지면서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원탁회의(2008.3.2, 백범기념관) /사진: 진보신당 부산시당(준)
 
  학계부문의 대표는 진보신당 건설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보이며 최선의 노력을 다짐한 반면, 노동부문의 입장은 현재의 진보신당 건설의 진행상황에 큰 우려와 날카로운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긴박한 총선일정일지라도 지난날의 성찰은 지속돼야하며 현재의 과정이 진보신당이 완결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 또 현시점에서 불필요하게 진보신당의 지향이나 가치를 논하는 등, 진지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역을 대표한 분도 현재의 창당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인정하며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어려운 조건을 인정하지만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진보신당의 필요성은 더욱 분명하기 때문에 모두가 노력해서 이번 총선에 정면대응하자는 주장도 펼쳐졌다.

  근래에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지, 연신 두리번거리다 회의장 뒤로 물러나 벽에 기대고, 쪼그려 듣다, 다시 밖으로 나갔다. 따뜻한 공기에 몽롱해 있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잠시 시원했다. 기념관 앞의 잔디밭을 좀 거닐었다.

 진보신당의 성패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한국의 수구-보수 양당구조가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패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길게 가야할 것이기에 너무 서둘러 판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어느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당구조와 정치상황이 그렇다. 오히려 대꾸할만한 진보신당 창당의 명분이 그나마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많아야 한국사회의 10%정도의 이해도 대변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오른쪽편향의 왜곡된 정치구조. 왼쪽의 이념적 기반이 거의 붕괴된 현재의 상황에서 바로 이 영역을 대변할 진보신당 창당은 무리가 없는 명분이 아닐까? 물론 이 곳에 오시는 분들이 그 가능성 때문에 진보신당 참여에 머뭇거린다면, 내 답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었다면 그 때 다른 이들에게 했던  대답, 그 정도?

  어쨌든 이 정도 당위적인 수준에서 진보신당의 창당명분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게 내 수준인지도 모르겠다. 또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이 코앞에 있다는 현실론. 그리고 여기에 예견되는 2MB 폭주...물론 김대중이란 선례도 있다. 군사독재시절 김대중도 정당은 했으니까. 그리고 집권을 했지. 어쩌면 그 만큼 길고 힘겨운 시간들이 필요하겠지만...

작성일 : 2008-03-03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