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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운동권, 촛불에 타버렸나
"거리와 광장에 그들은 있어도 없었다…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펌했수다

비장한 모습은 분명 아니지만, 자못 의미심장한 신호를 던져주며 타오르는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한달 째 온 나라를 출렁이게 하고 있다. 출범 1백일을 맞은 불도저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미국도 신경을 곧추세우고 바라보고 있다.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연구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21년 전 6월 항쟁과 비교하는 분석들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권력과 맞서 싸우는 대규모 행동의 중심에 거의 항상 자리잡고 있던 두 선수들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당과 운동권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집회 현장에 민주당도 뒤늦게나마 동참했고, 민주노동당은 단식농성 중이며, 진보신당은 칼라 TV를 통해 현장 생방송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총파업까지 선언했으며 지도부가 청계광장에서 농성 중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니?

그들은 거기에 있으나, 앞에 서 있지 못하고 묻혀 있으며, 발언은 하고 있으나 영향력은 없다. 그들은 이명박을 혼쭐내고, 강고한 보수 언론 지형의 변화 단초까지 만들어낸 '다중'의 힘을 보고 놀라워하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운동권과 무관한 30대 여성은 이런 글을 썼다.

한번은 공공노조의 누군가가 자유발언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공공노조가 깃발 들고, 빨간 조끼 입고 참석해도 환영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쪼그리고 앉아 그 얘기를 듣다가 옆자리에 앉은 참가자와 키득키득 댔다. 시위의 중심세력인 ‘시민’들에 비하자면 엄청난 ‘시위 고수’의 저런 ‘읍소’가 못내 귀여워보였던 때문이다.

정색을 하고 한 발언은 아니지만, 공공노조 관계자의 발언에는 현장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반영됐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집회에 끼워 달라"는 노조와 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시민들. 일반화시킬 수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분명히 지금 이 시기의 한 단면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 2008년 촛불문화제와 1987년 6월항쟁. (사진=레디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영향력의 부재뿐 아니라, 실제의 참여도 저조하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조직 차원에서 처음으로 '민주노총 촛불결의대회'를 열었다. 2,000명 참여가 목표였다. 하지만 시작은 300명, 끝날 때는 1,000명 정도만 함께 했다. 실력의 '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일부 소위 운동권 단체의 무책임한 행동은 오히려 참여 시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돼, 인터넷 상의 관련된 내용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손호철 "국민들과 멀어진 지 오래된 정당과 운동권"

21년 전 6월 항쟁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다. 20여년의 세월이 우리 사회를 그만큼 바꾼 것이며, 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사후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전문가들은 “시위문화의 새로운 변화”와 “그동안 국민들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불통’으로 일관한 정치권과 운동권 세력에 대한 외면”의 결과로 진단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0년대 6월 항쟁 등 과거의 시위는 정치인들과 운동권 세력들이 지도부를 구성해 단상에 오르고, 나머지 일반 시민들은 여기에 동원되는 ‘제도화된 시위’였다”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문화제는 별도의 지도부 구성없이 시민들이 주도가 되어 벌어지는 ‘자발적인 시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손 교수는 “현재 통합민주당만 하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민노당은 친북적인 성향으로, 진보신당은 아직 국민적인 인지도가 낮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등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그들의 눈높이로만 세상과 소통하려는 운동권 세력 역시 국민들과 멀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 2008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10대 소녀들과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한 운동권 대학생들. (사진=손기영 기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톨릭대 조돈문 사회학과 교수는 “80년대 시위와 2008년 촛불문화제는 정서적인 접근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그동안 운동권 세력이 추구했던 근엄하고 결의의 찬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분위기와 어울리고 결합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조돈문 "운동권의 근엄함, 어울리기도 힘들어"

이어 조 교수는 “또 방법적으로도 촛불문화제는 누구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운동권 세력의 일괄적인 통제나 조직 동원의 필요성이 없고, 일반 시민들도 이를 원하고 있지 않다”며 “정당 역시 이미 국민들이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대안지식연구회 김윤철 연구위원은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운동권 세력이 지극히 ‘제도화’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성정치권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불신이 시민들에게 깔렸다”며 “또 그동안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표현 방식도 더욱 개인적이고 자유롭게 변했는데, 운동권 세력들은 아직 ‘80년대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대중들의 정서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정당정치 역시 변화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기능 부전’에 걸려 있다”며 “진보정당들이 존재하지만 세력이 미약하고, 정당구조 자체가 특정한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독점’ 구조를 갖고 있어,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가 잘 수렴되지 않는 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팀장은 “정당들이 항상 앞장 서고 시민들이 이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과거지향적 발상”이라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들이 주도가 되어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동안 국민들이 원하는 해결책을 정당들이 먼저 제시하는데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운동권 세력이 너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력이 훼손되는 부분이 있지만,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조합원들이 촛불문화제에 잘 보이지 않으는 것은 80년대 전통을 잇는 운동권 세력이 ‘화석화’ 되어가고 징표”라며 “노조의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보다, 조합원 개개인의 문제를 더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조 리더십보다 조합원 개개인 문제

청계천과 서울광장, 그리고 촛불의 물결에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조직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행태와 내용의 정당이라면 정치적 지도는 고사하고, 인정받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시대가 왔다. 2008년의 촛불의 파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깊게 드리울 것이 틀림없으며, 특히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직접, 참여정치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노동조합도 사라지는 조직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어느 시위 참석자가 말한 것처럼 "이럴 때 노조가 힘을 보태주면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그동안의 비판적 여론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선봉에선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은 대중 투쟁에서 그들은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까.

운동권은? 진중권이 시위대가 탈근대라면 집권 세력과 정치권은 전근대이며, 운동권은 영문 몰라 서성대는 근대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영문도 모르고 서성대기만 하다가는 길을 잃고 아주 실종될지도 모른다.

2008년 06월 05일 (목) 15:46:23 손기영 기자 mywank@naver.com

작성일 : 2008-06-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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