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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경험과 한국적 수용의 과제
허성민(사민연…

1.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유팔무(한림대학교사회학과)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 서유럽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것은 산업혁명에 이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노동자 계급의 형성 및 성장에 따른 결과였으며,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시민혁명과 민주의식의 형성 및 확산에 따른 결과였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공동생산-공동분배를 이상으로 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는 이념이었고, 정치적인 면에서는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는 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녔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달리 경제와 정치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이념이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20세기로 넘어와 베른슈타인을 비롯한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나 정치 세력들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의미가 변화하는 역사를 거쳤다. 

공산주의라는 이념도 칼 맑스의 사상과 그것의 계승, 발전을 통해 사회주의 ‘일반’과 구별되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맑스에 의해 재규정된 공산주의란 혁명적이고 국제 협력적인 성격의 사회주의, 즉 ‘혁명적 사회주의’ 및 ‘국제적 사회주의’라는 뜻으로 제한되었다. 반면, 사회주의에는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이르러 초기적 발전단계의 공산주의 ‘체제’라는 의미가 덧 붙여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미에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정통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주의 세력들의 협력에 의한 혁명노선을,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정치적으로 ‘일당독재’의 노선(=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집중제)을 취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세력 중 다수는 스스로 사회주의의 정통임을 자부하면서 소련의 ‘공산주의’적 패권에 대해 반발하였고, 급진적인 공작정치와 정치혁명을 부인하는 한편, 합법적 제도정치와 민주적, 점진적인 개혁 노선으로 입장을 수정하였다.  이에 따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와 서유럽 중심의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간극이 크게 벌어졌고, 상호간의 반목, 대립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정통의 사회주의 혁명노선에서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혹은 ‘합법적 제도정치’를 적극 인정하고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합버적 권력을 통해 경제적인 생산-분배 시스템을 개혁해 나가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20세기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20세기 초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독일사민당의 ‘수정주의 노선’에 의해 수립, 정착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의해 ‘민주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천명(1951년, 프랑크푸르트 선언)되었다. 여기서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자기들 것으로 사용한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사회주의를 이상시한다는 점, 그리고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코민테른)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라 하면서 스스로를 그들과 구별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2차례에 걸쳐 보다 더 온건화 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 하나는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과 궁극적인 소유/경제혁명의 이상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소유제도 및 시장경제 질서를 인정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추세였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에 서유럽 주요국가들에서 새롭게 정립된 ‘제3의 길’ ‘신중도’의 노선들로서 ‘적극적 국가개입에 의한 복지제도 확대’라는 사회민주주의 기본정책을 약화 혹은 후퇴시키면서 자유경쟁 시장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 결합시키는 입장, 혹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하에서 노동자-민중의 복지를 제도적으로 확대 혹은 방어하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어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좌파 등 혁명적 성향을 지닌 좌파들로부터 혐오를 받고 비난도 받아왔다.


2.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과연 한국에 적합하고 바람직한가.

어떤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가 서유럽의 산물이고, 입장이 선명하지 못해 한국사회 발전의 대안으로는 어필하지 못하며, 그 나름대로 한계들을 가지고 있는 이념이라 대안으로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의 현안 과제는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같은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라든지, 민족 화해와 통일의 문제,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경제가 문제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생산-분배-소유-소비로 이어지는 경제생활은 개인이나 가족 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며, 정치, 교육, 지역 등 여러 가지 현안문제들과 직접, 간접으로 결부되어 있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본주의-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의 문제는 소위 ‘기본모순’에 해당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이념, 그리고 때로는 분단, 지역, 환경, 성차별, 국가간 갈등 문제 등은 소위 ‘주요모순’(=현안이 되는 모순)의 지점이 될 수 있지만, 기본모순에 해당하는 것들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 즉 대안 중 하나로 생겨난 이념이자 사회운동이고 하나의 정치-경제 체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는 어떤 시스템인가. 그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에 기반한 생산시스템으로서 생산-소유된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 팔아 소비하면서 한 쪽에서는 이윤과 부를 추구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생계를 이어가는 그런 경제생활 시스템이다. 그래서 시장경제 혹은 자유시장경제라고도 불리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적 소유에다 이윤추구에다 자유로운 경쟁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격차와 빈곤층 형성, 상업주의와 경쟁주의와 개인주의가 활성화된다. 반면, 사회적인 생산 및 분배의 조절 메카니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순환 과정의 불안정성과 그에 따른 낭비, 계급들 간의 경제적 격차와 지배, 갈등 문제를 항시 수반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장점으로 말하자면 능력과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경쟁, 그리고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유연한 시장조절 메카니즘, 경쟁의 압박과 강제성이 배출하는 부와 생산성의 증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장점들을 ‘자유’와 ‘유연성’과 ‘생산성’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단점들만 ‘지양’(止揚; Aufheben)하여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폐지하고, 사회적 계획에 의한 공동생산-공동분배 시스템을 추구한 이념이자 체제였다. 사회주의 체제들은 약 반세기 동안 그 이상을 실현하고 살아남아 작동하다가 대개는 무너졌고, 지난 10여 년간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 시스템, 자유민주주의를 도입, 적용하였으나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마피아 문제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공산주의)보다는 장점이 많고 수명도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만일 본래대로 순수한 상태였다면, 여러 차례 무너졌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하나는 사회민주주의적 국가개입, 조절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이를 우리는 ‘수정 자본주의’라 부르지만, 자본주의에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다면, 경제위기에다 계급적 저항과 폭동으로 인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국가는 물가, 조세, 금융, 무역, 경기부양 정책 등을 통해 경제위기를 피해 가는 경제조절 정책들을 펼치게 되었으며, 노동조건과 임금 및 대 실업 정책 등을 통해 일정부분 저소득층의 노동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이른 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나라는 이러한 ‘수정’을 필요한 만큼만 소극적으로, 서유럽 나라들은 사회 민주주의적으로 가능한 만큼 많이 ‘수정’하여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흔히 미국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자본주의에 가까운 나라”라 평가받고 있지만, 순수 자본주의는 이미 지구상에서 볼 수 없게 된지 오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수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수정은 20세기 전, 후반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부터 소극적인 형태로 후퇴해 왔다.  이같은 수정을 통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영생’(?)케 한 것이 사실이지만, 고전적 사회주의의 이상을 부분적으로 실현한 것도, 또 지금 이 순간도 실현, 혹은 방어(=제3의 길, 신중도 노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정통의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수정된 자본주의와 함께 “굿굿이 살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현실성이나 적합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에 단점과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소위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이다.


3. 사회민주주의 두 가지 문제와 과제.

생산적으로 투입되는 자본은 소위 “비싼 임금으로 좋은 노동조건에서 편안하게 일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낮게 만들며, 현재적, 잠재적 피부양 인구(=전체 인구의 약 30%; 미성년자, 전업주부, 장애인, 환자, 실업자, 유휴 노인 등)를 위해 투입되는 자본, 특히 국가재정을 통한 비생산적 투입(?)의 비중이 전체 자본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고비용, 저효율, 저생산성, 저경쟁력, 저수익’의 문제가 있다. 근래의 신 사회민주주의들(1990년말 이후의 영국, 독일 등의 제3의 길, 신중도 노선)이 사민주의를 후퇴시키고 ‘생산적 복지’를 채택한 이유의 하나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사회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 즉 “사회민주주의는 과연 어떻게 사회복지를 하면서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그 다음 하나는 ‘선거의 딜레마’(셰보르스키)라고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라 할 수 있는데, 합법적인 부르주아 정당정치제도가 “표를 과반수 얻어야 당선되고 집권하고, 그렇게 해야 소기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집권’이나 ‘집권여당’이 되고자 하는 목표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표를 좇아 다니다 보면,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선거와 사민주의 우경화 정치에서 중대한 ‘캐스팅 보트’ 역을 해 온 집단은 바로 ‘고소득-고납세자 화이트칼라 상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불만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세금부담을 줄이겠다고 해야만 사민당은 이들의 표를 유지하거나 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이것도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큰 과제이다. 즉, “사회보장과 사회복지를 위한 재정조달을 어디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또 앞에서 언급한 과제 ‘경쟁력 향상의 메커니즘 창출’의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풀어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4. 사회민주주의의 한국적 수용 과제.

앞서 지적한 두 가지 커다란 문제점들은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해결해 가야할 커다란 과제들이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시적 대안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안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에 그러한 대안을 수용,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선 서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우리 ‘몸’에 맞는가 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럴 경우, 우리가 입고 있는 양복, 양장에서부터 유럽이나 유럽의 적자 미국으로부터 들어와 정착되지 않은 것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양복, 양장, 양말, 양식, 양주, 블루스, 댄스뮤직, 힙 합은 물론, 천주교, 기독교, 웨딩 문화 퓨젼(fusion), 축구, 농구, 야국, 골프, 스키 등등의 스포츠, 또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물리학, 화학, 공학, 의학 등등의 학문들과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상들, 그리고 외래의 말, 말, 말들 -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외래의 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미 우리 것이 되어 있다.

우리 한국사회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20세기초 일제시대 때부터 들어 와 수용되었으며, 한국적인 풍토에 맞게 변형된 바 있었다. 기독교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민주주의는 우리 몸에 맞을 수 있고, 개량한복처럼 우리 몸에 맞도록 바꾸는 방안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지금은 21세기이고, 이제는 새롭게 전진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에 있어왔던 사회민주주의(민주노동당 내의 중도파 포함)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을 통해 제기되어 온 두 가지의 커다란 과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며, 21세기적 상황(환경, 인권, 시민운동, 분권과 자치, 팍스 아메리카나, 중국 시장사회주의의 대두 등등)을 고려해 새로운 색채(=분홍색+녹색)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분단상황 때문에 형성된 ‘머리 속의 흑백논리’나 그로 인해 주눅들은 ‘중도노선과 이념’을 해방, 복원시켜 나가며 사민주의 이념과 결합시켜야 할 것이다. 

* 글쓴이 : 유팔무(한림대교수, 사회학)

작성일 : 2008-05-2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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