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 당원가입
   
 

스웨덴,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가장 수정주의적인 사민당이 가장 좌익적인 정책 실현
이재영(2002)


이륙(take-off). 조금이라도 주의력 있는 사람이라면, 비행기의 이륙 각도가 얼마나 가파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온 로스토우식 take-off의 나라, 한국을 떠나, 전혀 다른 take-off의 나라 스웨덴을 향한다.

  ‘어떤 나라에 살고 싶냐’는 사회유형 선호도 조사에서는 으레 ‘북유럽 사민주의’나 ‘혼합 경제’가 수위를 차지한다. 스웨덴은 그만큼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네들이 실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은 아주 드물다. 전 세계 최고의 노조 조직률을 자랑하고, 사회민주당이 70여 년이나 장기 집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국민들은 ‘북유럽 사민주의’에 대한 지지를 주저 없이 철회할 것이다.

  뱃살 깨나 두들기는 사장님들이 독일차와 견주다 최종 순간에 탈락시키는 볼보와 사브를 만드는 나라, 미제 일제 가전제품에 식상한 강남의 부인네들이 튀는 디자인과 더 비싼 물건을 찾아 헤매다 귀착하는 일렉트로룩스를 만드는 나라, 모토로라 노키아에 버금가는 에릭슨의 나라. 실제,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상품정보 뿐이다.

비행기 창 밖으로는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시베리아의 지평선. -76℃. 서행(西行)하는 비행기를 따라 몇 시간째 계속되는, 청홍 대비 선명한 석양을 지켜보며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그들은 그리 멀리 나갈 수 있었는가? 우리가 그런 정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1. ‘사회복지 천국’ 스웨덴

"독일은 지옥이다. 스웨덴에 비하면!"

  독일 사회민주당의 여성활동가가 스웨덴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녀 역시 독일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가 일군 여러 사회상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터이다. 대학 학비조차 완전 무료인 나라가 독일 아닌가. 몇 년 동안 스웨덴에서 살던 그녀가 독일 친구들에게 던진 한 마디. “스웨덴에 비하면 독일은 지옥이다!” 그만큼 스웨덴은 독보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전일화에 의해 유럽 각국의 사회복지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국내에 전해진 바에 따르자면, 영국이 가장 심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그 뒤를 따른다 한다. 국내 학자들은 이런 스펙트럼에 비추어 각국 사민주의 정당과 정부, 정치인들의 이념적 노선을 ‘우익 영국 - 중도 독일 - 좌익 프랑스’라는 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한 한국 학자는 유럽을 휩쓸고 있는 민영화와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 스웨덴에서도 사회복지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학자는 스웨덴 사회복지가 여전히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스웨덴 사회복지의 축소는 미미해"

  짧은 시간, 필자가 둘러 본 바에 의하자면 스웨덴 사회복지의 축소 정도는 대단히 미미했다. 실업·노후·육아 등의 각종 연금을 통해 국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와 교육·보건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 일부 병원과 학교가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가 가지고 있었고, 정리해고 같은 일도 없었고,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단지, 경영이 민간에 위탁되었을 뿐이다.

  많은 국민이 반대했다는, 탁아비용 일부를 이용자(부모)가 부담하는 정책도 대한민국 국민이 보기에는 ‘복에 겨운’ 수준이었다. ‘악화’된 정책에 따라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비용이 아이 한 명 당 가구 소득의 1∼3% 정도라 하는데, 한국이라면 3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를 내는 것이다. OECD 보고에 따르자면 2∼6세 아동의 공공탁아율이 프랑스에서는 99%나 되는데 비해, 스웨덴은 80%밖에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야팔라 콤뮨(Jafalla kommun)의 전(前) 시장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복지 수준이 낮은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을 받고 아이를 집에서 돌보기 때문이지요!” 애초 계획돼 있던 사민당 소속 한 남성 국회의원과의 면담이 무산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이었다.

  소득 보장 연금과 보건·교육의 국가 부담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이 채용하고 있는 제도이다. 스웨덴은 이런 제도에 더하여 노동(근무와 취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교통비와 식사비까지도 국가나 자본이 책임지는 나라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 분야가 전체 고용의 19%를 차지하고, 공공 고용이 전체 고용의 1/3이나 된다. 학자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시스템을 일컬어 ‘스웨덴 모델’이라 이름 붙였고, 아직까지는 그 노선과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사회복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듯 하다. 연금은 받지만 세금은 안 내는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전 국민의 17%나 되고, 출산율 저하로 인해 세금을 낼 수 있는 세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고등교육 붐으로 인해 교육비용이 증대하고,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정 적자를 축소하라는 EU의 압력 역시 스웨덴 사회복지의 위협 요소가 될 것이다.

"시장임금의 60%가 사회임금"

  통계를 뒤적여 보면, 스웨덴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한국의 두 배 반(250%),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은 한국의 한 배 반(150%) 정도 된다. 이것은 적어도 시장임금(Private Wage)에 있어서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유럽에 그다지 뒤쳐지지 않는다는 사실, 다른 계층에 비해 상당히 많은 소득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고임금 때문에 대만이나 싱가폴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는 한국 자본가들의 판에 박힌 주장은 이런 현상을 빚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진실의 한 측면을 과장하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자본가(국가까지 포함하여)들이 시장임금 이외의 사회임금을 거의 지불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시장임금의 60% 정도 되는 사회임금이 사회복지 제도와 공공서비스를 통해 추가 지급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조망을 얻는다. 한국 노동운동가들이 꼭 짚어 보길 당부한다.

  2. 무기들 - 사회민주노동당, 노동조합, 노동교육협회

  한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북유럽을 선망하는 것은 ‘부자 나라’ 미국과 일본의 국민들이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사이에는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국내의 정치학자들과 운동권 이론가들은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나는 ‘힘있는 진보정당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단 한 가지 차이에 주목한다.


미국 노동운동이 메이데이의 폭발력을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정책교환에 쏟아 부었던 데 비해,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 사회민주노동당(SAP)을 건설하고 그 정당이 70여 년이나 장기 집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활동가가 정부에서 일해...가장 수정주의적인 사민당이 가장 좌익적인 정책 실현"

  연수 마지막날 필자는 몇몇 일행과 함께 사회민주당 중앙당사를 찾아 나섰다. 지도에도 안 나오는 당사를 찾기 위해 행인들에게 물었다. 스톡홀름 길거리에서 만난 스웨덴 보통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 세 가지. 첫째, 자기도 노동조합원이라며 반갑게 손을 맞잡아 준다. 둘째, 묻지도 않은 LO(제1노총)를 설명하며 LO 사무실을 안내해준다. 셋째, 사민당사가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른다. 민주노동당 당원들도 중앙당사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겠지만, LO 사무실을 알고 있는 스웨덴 사람들이 사민당사를 모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결국 찾은 사민당사는 너무도 소박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정부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그랬다. 스웨덴 보통 사람들에게 사회민주당은 곧 국가였고, 사회민주당을 만나려면 당사가 아니라 정부청사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19세기에 가장 수정주의적인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은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가장 좌익적인 정책을 실현하는 사회주의 정당으로 남아 있고, 스웨덴의 모든 사회상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장관도 노동조합원

  스웨덴의 노동법은 한국에 비해 그다지 선진적이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차피 안 지킬 것이니 좋은 말이라도 해주자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입법한 것이 한국의 노동관계법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동자와 스웨덴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스웨덴에서는 장관도 조합원이다. 스웨덴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블루칼라 85%, 화이트칼라 75%에 이른다. 군인노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국의 방문자들은 “그 노조 노선은 진짜 전투적 조합주의겠네”라며 놀라워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과 가장 장기집권 중인 사회민주당 사이의 ‘결탁’ 관계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LO 초기에는 노총 가입 조건으로 사회민주당 입당 의무가 지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스웨덴의 자본가정당들은 요즘, 사민당과 노조의 낙하산 인사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라는 교과서적 정답 이외에 비장의 무기가 더 있었으니, 바로 교육이다. 사민당·좌익당·LO 등이 연합하여 만든 ABF(노동교육협회)에서는 약 5만 명의 강사가 매년 전 국민의 20%를 거의 무료로 교육한다. 900만 명이 채 안 되는 전체 인구 중, 약 100만 명이 ABF 스터디써클에 속해 있고, 문화활동에는 200만 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낚시나 유도, 볼륨댄스 같이 비정치적인 교육이 절반 정도 되고, 나머지 절반은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테러리즘’ 같이 정치적 교육이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업주에게 통고만 하면 교육 참가가 법에 의해 무제한으로 보장된다는 점이다. 하루의 1/3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자던 맑스의 상상력은 스웨덴의 현실에 미치지 못했다.

  3. 좌절(?)된 실험

  한국은 일본에 뒤이은 세계 최대 수준의 출판대국이다. 물론 출판량의 상당 부분을 학습참고서가 차지하고 있지만, 외국 유명학자들의 저서가 자국어로 번역 출판되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출판물을 통해 노엄 촘스키나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석학들이 꽤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 버금가는 학자로 마이드너가 있다.


  스웨덴 체류 프로그램에 ‘마이드너 박사와의 토론’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바로 그 마이드너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생존 여부도 알지 못하고 있던 터였고, 설사 생존해 있다 할지라도 아흔에 가까운 노학자가 아시아 소국에서 온 노동운동가들에게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기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마이드너로부터 ‘마이드너 모델’을 설명들을 수 있었으니, 이번 방문의 최대 수확이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실현하지 못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렌과 마이드너가 개발하여 1950년대부터 시행된 연대임금 정책은 한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다. 한국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야 전혀 실현되지 않는 ‘좋은 말’에 불과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재벌기업에서 일하든 가리봉동의 마찌꼬바에서 일하든 하는 일과 노동시간, 숙련도가 같다면 같은 임금을 받게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라 자처하는 중국에서조차도 그런 정책은 실현되지 않고 있으니, 적어도 임금에 있어서의 ‘평등’은 스웨덴이 가장 앞서 갔던 것이다. 물론, 연대임금 정책의 배경에는 대기업의 임금 인하를 통해 경쟁력을 복구하려는 사민당 정권과 수출산업 노조 지도부의 입김도 숨어 있다. 하지만, ‘정액 기준’이라는 80년대 식의 낮은 연대 원칙마저 무너진 후, 노동운동의 발전과 임금 격차의 심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가들에게 스웨덴 노동자들의 평등주의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마이드너는 연대임금 정책의 또 다른 측면을 “한계기업에 대한 경영합리화, 고용이동 정책”이라고 밝혔다. 근래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기업 퇴출 정책과 비슷하지만, 한국의 구조조정이 행정명령에 의존하는 데 비해 스웨덴은 임금인상을 통한 비용압박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퇴출 기업 노동자의 생활과 취업이 국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의해 완전히 보장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연대임금 정책은 1980년대에 이르러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중지된다. 임금 인하를 마뜩치 않아 했던 대기업의 고임금 노동자들이 더 이상의 희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마이드너가 추진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임노동기금 정책이었다. 임노동기금 정책은, 연대임금 정책이 시행됨으로써 초과 이윤이 축적되고 있던 대기업의 이윤 중 일정 부분을 의무적으로 임노동기금(‘집단적 자본 형성’)으로 조성하여 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였다. 이론적으로는 임노동기금 도입 후 20∼30년이면 기업 주식의 50% 이상을 노동자들이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주의 국가의 무상몰수나 유상몰수를 통한 국유화와는 궤를 달리 하지만, 유상구매를 통한 ‘기금사회주의’라 불리울만 하다.

  임노동기금 정책은 그 발상이 발표된 직후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는데, 자본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고, 사민당 역시 내심으로는 그런 ‘혁명적 조치’에 반대했다. 마이드너의 구상과는 달리 완전히 김 빠진 법안이 형식적으로 입법될 때에도, 사민당 소속의 경제장관이 “미친 짓”이라 표현할 정도였다. 마이드너는 이 보이코트를 사민당이 장기 전망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No vision”)으로 단정했고, 장차 수상이 될 사람이라고 소개받은 수상실의 외교안보 보좌관은 “우익 정당들이 반대해서”라고 변명했다. 한국의 방문자들은 마이드너 박사의 단호하고 명쾌한 설명에 매혹되었고, 예상했던 모범답변 그대로를 내놓는 외교안보 보좌관에 실망했다.

  스웨덴의 한 노조 간부는 흘러가는 말인 듯 임노동기금 정책의 현주소를 토로했다. “요즘 노동자들은 사회화보다는 임노동기금이 이율율 높은 주식시장에 투자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이드너 모델은 투쟁의 산물. 아직도 투쟁 중

  마이드너는, ‘마이드너 모델’이라 불리는 연대임금 정책과 임노동기금 정책이 자신의 연구물이 아니라, 스웨덴 노동계급의 오랜 투쟁에서 자연스레 생성된 산물이라며, 자신은 “아직도 투쟁 중”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사회주의를 잊은 사회주의당과, 사회주의를 싫어하는 노동계급과 투쟁해야 할 것이다. 한국 방문자들은 그의 투쟁이 실패하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도 노혁명가에게 그런 현실을 알려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OECD 주요국의 GDP 대비 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2004년(%) 사회보장기여금 = 고용보험료 + 산재보험료 + 국민연금 기여금 + 보훈기금 기여금 + 사립학교교원연금 기여금 + 군인연금 기여금 + 공무원연금 기여금 + 건강보험. 유럽 15개국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이태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영국. 유럽 19개국은 유럽 15개국에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를 포함. 자료: OECD, Revenue Statistics 1965-2005, 2006.ⓒ프레시안


  4. 국가경제와 국제연대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는 국가경제와 산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산업’의 덕을 톡톡히 봤고, 근래 20∼30년 사이에는 그 ‘산업’의 부진으로 인해 국가 자체의 시스템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민당의 전문가들은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불참함으로써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생산력을 보존할 수 있었던 덕분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부정치 않는다. 그러나 그런 유리한 위치는, 유럽의 산업이 현대화하고 한국 같은 신흥공업국들(NICs)의 추격을 받게 되는 70년대에는 사라지게 된다. 이에 스웨덴 국민들은 사민당을 실각 시켰지만, 보수정당들은 더욱 무능했고, 공은 다시 사민당으로 넘어 온다.

  스웨덴 경총의 국제담당 간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웨덴 자본가들은 ‘말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고 달리게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스웨덴 자본가들은 남아공 노동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스웨덴 노조의 힘을 빌린다. 스웨덴 노조는 남아공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하고, 스웨덴 자본은 그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스웨덴 자본은 전 세계 어딜 가든지 노조를 만들라고 권한다. 그래야 파업 때 대화상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스웨덴 자본가들은 사민당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국가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사민당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사회복지 축소에도 사민당이 가장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상의 모든 국가 중에서 가장 국제주의에 충실한 나라이다. 서유럽 사회민주당들의 사회애국주의나 소비에트 국가주의 따위가 아니라, 외국 노동자들을 돕고 연대하는 그런 국제주의를 진짜 실현했던 나라는 스웨덴뿐이다. 이 나라의 수상이었던 올로프 팔머는 미국의 베트남 침략을 규탄하고,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공개 비판한 몇 안 되는 국가 지도자였다. 결국 올로프 팔머는 아내와 함께 스톡홀름 시내를 거닐다가 자객의 총탄에 운명하고 만다.

  그러나 지금 국제주의는 잊혀진 덕목이 돼 가고 있다. 지금 스웨덴은 전투기와 잠수함을 수출하고, 한국의 노동쟁의를 피해 자본을 철수시키는 나라가 되었다. 얼마 전, 스웨덴은 유럽연합의 의장국으로서 북한을 방문했다. 스웨덴 수상은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김정일은 “시장경제와 스웨덴 모델에 관심이 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을 수 있는 최상의 상찬을 끝내고 난 후에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국제연대의 순수한 마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스웨덴 사민당 간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 스웨덴과 북한 사이에는 ‘장사’ 이외에는 남을 것이 없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는 세상의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북한이란 말인가? 북한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곳에는 60$의 고급노동력이 있다. 70년대, 세계 일류를 구가하던 스웨덴의 조선과 철강은 일본·한국으로 넘어 왔고, 사회민주당은 실각의 쓰라림을 겪었었다. 이제는 전략산업인 통신산업(휴대폰 등)에서까지 추월을 당하고 있다. 이런 때, 자본가들의 대안은 으레 외국의 저임노동력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사실 스웨덴은 아직도 사회주의를 ‘수출’하고, 외국 노동운동에 돈을 대주는 나라이다. 내가 스웨덴 국제주의의 퇴조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일국혁명을 한 모든 나라들이 실패했거나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고, ‘외국인 노동자 축출’과 ‘자주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간부들이 있는 ‘노동당’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5. 서울로 돌아오기


  스웨덴 자본가들은 자기네 나라가 ‘사회주의’라 주장하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라 주장한다. 스웨덴을 ‘자본주의’로 분류하는 것을 보니, 나도 노동계급에 속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나라를 만든 것은 노동계급과 사회민주당이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을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정도로 정의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사회주의는 또 뭐란 말인가? 한국보다 더 빈부격차가 크고, 몇 백만 명씩 정리해고하는 중국이야 제쳐두더라도, 옛 소련은 어느 점에서 스웨덴보다 나았을까? 민주주의야 스웨덴이 월등하고, 생활 수준, 노동자 권리, 심지어는 노동소득분배율까지도 스웨덴이 나은데? 나라 이름에 ‘노동자 나라’라고 도장까지 찍어 놓았던 사회주의 나라들이 과연 더 진보한 사회였을까?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한국의 겨울은 춥습니까?”
“스톡홀름보다는 춥지요.”

  실제, 스톡홀름은 따뜻했다. 알래스카만큼이나 북쪽에 있다지만, 따뜻하고 습한 서해안성 기후 덕택에 사람이 느끼는 추위는 한국에 비해 덜한 편이었다. 아무려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옷깃을 여며 쥐고 모진 바람을 헤쳐가야 하는 서울의 겨울보다 추울까?

“민주노동당은 어떤 사회모델을 지향합니까?”
“개인적으로는 소비에트 모델, 유고슬라비아 모델, 스웨덴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특정한 모델을 추종치 않고 한국 사회에 맞는 사회모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당신들은 언제쯤 집권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20∼30년 정도.”
“당신은 언제쯤 장관이 됩니까?”
“…….”

  산재 사망자가 연 50명이나 된다고,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분개하는 스웨덴의 노동운동가들에게 “한국에서는 기업 한 곳에서 그 정도씩 사망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국노동당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독일사민당을 ‘제국주의’라고 단정하는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이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길 바랄 수도 없었다. 배포 편한 ‘좌파 평론가’들이야 ‘개량주의’하고 비웃으면 그만이지만,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고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 담당자로서의 나는, “우리는 백 년 걸렸습니다”라는 말에 짓눌려 매일 밤 뒤척여야 했다. 그들은 이미 까마득히 멀리 있었고, 우리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다.

  입국일이 가까워질수록 내심 초조해진다.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 한국이 싫다는 게 아니다. 서울 거리의 번잡함과 비견할 데 없는 다이나믹을 너무도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속의 나,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두려울 따름이다. 한 발 물러선 관찰자로서 남들 살림을 비껴보는 권리는 너무도 한갓지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삶을 삶으로 직시해야 하는 주체의 의무가 버겁고, 한 푼도 덜어지지 않는 그 무게에 나날이 여위고, 지치고, 퇴락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결국 나는 신산하고 남루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의 희뿌연 하늘 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바퀴는 굴러가야 하니까.


*출처 : 이재영  /「이론과실천」 2002.3
(이 글은 이재영(현 레디앙 기획위원)씨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정책국장 시절에 씌여진 글입니다.)

작성일 : 2008-05-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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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8-05-30 16:09  
글이 참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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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레디앙) 05-30
56    노동자 정치세력화 위한 연대회의를. 복수 진보정당 시대 노동자…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②] "민주노총에 대한 위험한 발상들"
단병호(레디앙) 06-01
55 생명을 지키는 촛불
     생명의 가치를 시장에 내다파는 막가는 정부
한재천 05-31
54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경험과 한국적 수용의 과제 허성민(사민연… 05-28
53 스웨덴,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1)
     가장 수정주의적인 사민당이 가장 좌익적인 정책 실현
이재영(2002) 05-28
52 "나도 천천히 느긋하게 가고 싶다"
     [이근원의 글을 읽고] "토론이라도 빨리 하자…시간은 남의 편"
이창우 05-27
51 [사회민주주의연대]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길 허성민(한림대… 05-24
50 몬드라곤, 자본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 (3)
     "노동자 소유의 원칙 등 자본주의 기업과의 차별성 고수"
최혁진(원주의… 05-23
49 식탁을 위협하는 GMO 옥수수 (2)
     카길,몬샌토에 코꿰인 우리의 식량
한재천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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