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 당원가입
   
 

비지론-독자론 넘어 '연합정치'를
[주대환 비판을 비판함] '08년 신노선'에 적극 동의한다
최병천

1. 선거운동 中, 길거리에서 ‘한국 전쟁’을 만나다

   
  ▲필자
 

2006년 지방선거 때다. 당시 나는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하여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소 알던 분을 통해 사람을 소개받기도 하였다.

소개받은 분은 호남 출신이셨는데 한참 말씀하시던 중에 내 소속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는 것을 확인하더니 금방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전쟁 시절 본인의 가족들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시기 시작했다. 그분에게는 ‘호남’이라는 코드보다 ‘한국전쟁’이라는 코드가 훨씬 더 강렬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나는 한국전쟁과 관련된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민주노동당 서민정당인 것은 알겠지만, 김정일을 추종하지 않는다는 신문광고를 하면 적극 도와주겠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1953년에 끝난 줄 알았던 한국전쟁이 ‘지금 현재까지’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고학력 중산층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유

한국전쟁은 도대체 이 땅의 민중들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선거 이후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를 비롯한 관련 책을 보곤 했다.

이런 고민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지식인들이 ‘군부독재’를 경험했다면 이 땅의 민중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절대빈곤의 시대에, 애비 에미 없는 자식이라는 말이 죽음만큼 굴욕적이던 시대에, 한국전쟁으로 엄마, 아빠, 형제 자매를 잃었다면, 그리하여 가난해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설움은 자연스럽게 ‘한국전쟁’과 닿게 되고, ‘북한’과 닿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1950년대 출생한 사람이 있다면 현재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바로 이 지점이 ‘50대 이상’의 세대에게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0%에 가깝게 나오는 근본 이유이다. 

3. ‘절반의 진리들’ - 좌파와 우파의 ‘증오의 정치학’

대한민국 좌파들 자부심의 근원은 대한민국 우파의 뿌리가 △군부독재 △친일파 △정경유착인 것과 달리 자신들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반면, 우파들 자부심의 뿌리는 좌파들이 한국전쟁에서 책임이 자유롭지 못한 반면 자신들은 경제성장까지 이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증오의 정치학’을 경쟁했다. 우파는 좌파를 박멸의 대상으로, 좌파는 우파를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들은 서로 ‘절반의 진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는 실천적으로 다음의 두가지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안보문제(친미/북한문제)의 역사적·경험적 ‘실재성’이다. 조선일보의 이데올로기적 공세 때문에 안보상업주의가 먹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민중적 체험’이 있기 때문에 안보상업주의가 작동한다는 <선후관계>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둘째,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후발산업화는 많았지만 대한민국처럼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여기에는 비록 그가 독재자였지만 박정희의 ‘역할’도 있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이제 ‘팩트’의 영역이 되었다.

(박정희 시대 경제적 성과에 대한 최근의 진보 경제학계 논의로는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창비)에 수록된 조절이론적 접근을 한 서익진 교수와 제도주의적 접근을 한 조영철 박사의 논문을 추천한다.)

4. ‘민주화 이후’, 성찰적 대안 좌파의 모습 - “우파의 존경을 받는 좌파”

민주화를 꿈꾸던 사람들은 군부독재와 광주학살에 분노하며 열심히 싸웠다. 그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민중들에게는 역시 중요했던 나머지 ‘절반의 진리’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증오의 정치학’과 ‘반대의 정치학’을 넘어서지 못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더 많은 민중들이, 더 절박하게 경험했던 것은 한국전쟁과 경제성장이었다. 그것은 80년대 민주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무게를 가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치 유럽의 저소득 서민들이 사회복지를 ‘체험’했기에 지금도 강력한 <복지동맹>의 지지기반인 것처럼, 대한민국의 저소득, 저학력 서민들은 한국전쟁과 박정희식 경제성장을 ‘체험’했기에 지금도 강력한 <안보-성장동맹>의 지지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서민대중’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렇듯 그들 주장의 합리적 핵심을 가슴으로 수용하고, 가슴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민중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적 논리 중에서 ‘합리적’ 부분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적극 무력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치 전선을 ‘복지 대 시장만능’으로 선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5. 노동당 노선의 제출자가 쓴 노동당 평가

주대환이 <시대정신>에 기고한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와 좌파의 진로」(이하 「진로」)라는 글은 내가 지난 몇 년간 본 그의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잘 정돈된 글이다. 주대환의 글은 △분당사태 분석 및 평가 △NL-PD의 역사적 기원 및 공통점 △4가지 태도 전환의 필요성 △좌파의 새로운 정치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글에 대한 내용적 검토는 후술하기로 하고, 그의 주장은 동의 여부를 떠나 길게는 35년, 짧게는 91년 신노선 제출 이후 18년간 민주노동당의 산파 역할을 했던 ‘노동당’ 노선의 제출자답게 많은 고뇌가 담겨있고, 경청할 부분이 많은 글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레디앙>에는 「조선일보 류근일, 주대환 칭찬한 이유」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편집되고, 박노자의 팩트 확인도 없이 쓴 ‘생뚱맞은’ 3류 비판 글과 초딩스러운 댓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진보신당 게시판에도 마치 ‘이지메’에 가담하듯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해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비판 대부분이 기본적인 ‘독해’조차 안 되어 있는, 논술로 치면 ‘논제’에 충실하지 않은 주장성 비판이라는 점에서 그 수준 낮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6. 주대환 비판에 대한 反비판 - 이광호 기자의 접근은 명백한 ‘오버’

주대환에 대한 비판은 크게 4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는 듯 하다.

첫째, ‘매체’ 비판이다. 기고된 곳이 <시대정신>이라는 우파 매체이고, 류근일이라는 조선일보 대표 필진이 칭찬한 것 자체가 불순하다는 의혹이다. 레디앙 이광호 기자가 이러한 비판의 선두에 있는 셈이다.

둘째, ‘글 내용’에 대한 비판이다.(박노자) 셋째, 안티조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다. 김수민의 글이 이에 해당한다. 넷째, 주대환 ‘노선’(?)에 대한 비판이다. 역시 김수민 등이 대표적인 듯하다. (김수민 주장에 대해서는 마지막 부분인 ‘정치전략’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이광호 기자의 비판은 명백한 ‘오버’이다. 이광호 기자는 해당 매체가 “좌파에 대한 역사적 구타”를 해오던 곳이고, 그곳이 “새로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 아니냐고 의문을 보낸다. 쉽게 말해 ‘당신 변절하려고 작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독심술’에 입각한 접근법으로 올바르지 않다. 또한 “적이 칭찬하면 적의 편 아닌가”라는 전형적인 당파성의 접근법으로 옳지 않다. 우리는 오직 주장 자체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야 한다.(필자가 본 이번 류근일 글은 전적으로 동의되는 내용들이었다.)

또한 조선일보의 당내 좌파에 대한 애정(?)은 단지 주대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당하다. 조선일보는 지난 몇 년간 민노당 내에서 당내 좌파들이 주체파들과 권력투쟁을 할 때마다 지면을 ‘할애하는’ 친절(?)을 베풀어왔다. 국보법 올인 논란, 북핵논쟁, 일심회 논쟁, 그리고 종북주의 논란 및 분당 사태까지.

조선일보는 심지어 총선을 불과 1주일 앞둔 2008년 4월 1일에는 눈에 잘 보이는 지면에 다음과 같은 시론을 통해 진보신당에 대한 투표지침(?)까지 내렸다.

“.......종북주의자 또는 주사파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명시한 좌파 파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이에 반해 북한 인권 개선을 들고 나온 진보신당은 민주적 좌파이다. ........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이왕에 좌파에 표를 찍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노당이 아니라 진보신당에 한 표를 주라고 권하고 싶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난다면 민노당은 병든 날개이고 진보 신당은 그나마 건강한 날개이기 때문이다. ”
「시론 : 민노당-한총련은 병든 날개」, 4월1일, 조선일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1/2008040101988.html

조선일보의 이러한 접근은 좌파를 통해 주체파를 공격하는 이이제이(夷以制夷) 전술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자신들도 수구꼴통의 소리가 부담스러워 ‘현대적 좌파’는 동의한다는 제스처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조선일보가 무슨 의도이건 그건 조선일보의 몫이지 주대환 또는 진보신당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7. 주대환 비판에 대한 反비판 - 박노자와 김수민의 경우

둘째, “대한민국을 긍정하라”는 글 내용에 대한 박노자의 글은 참으로 ‘생뚱맞은’ 비판이다.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PT독재론 폐기의 2탄쯤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주대환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역사적’ 정통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박노자는 대한민국의 ‘현실적’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오세철 및 기륭전자 사태에 주대환이 박노자와 견해가 다를 것이라 생각해서 언급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범주가 다르고, 개념의 레벨이 다른 것을 뒤섞고 있는 셈이다. 박노자는 무엇보다 비판의 기본인 ‘팩트’ 확인조차 안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고 섵부른 논평이었음을 인정하고, 주대환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셋째, 안티조선에 입각한 비판이다.(김수민) 안티조선이 일시적 ‘시민운동’의 차원에서라면 긍정해줄 여지가 있겠지만 정당에서 대표적 우파 신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상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철학적 근본전제는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란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맞을 수도 있다는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방 주장을 ‘타도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당연히 상호소통을 통한 진리의 상호침투를 승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극좌파이건 극우파이건 모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정당이 ‘안티조선’의 차원에서 기고, 인터뷰를 금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PD적 잔재’에 입각한 체제 부정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긍정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한 주대환의 글을 <시대정신>에 기고한 것은 오히려 적절한 행위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한때 애독자인 적도 있는 <시대정신>이란 잡지는 'New Right 이론지’라 불릴 만큼의 수준은 갖고 있는 잡지이지 ‘빨갱이 사냥’으로 혈안이 된 그런 잡지가 아니다. 한번이라도 읽어는 봤는지 궁금할 뿐이다.)


8. 주대환 주장의 내용적 검토 - ‘4가지 태도 전환’을 중심으로

주대환은 「진로」를 통해 4가지 태도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 내용을 적어보면 △도덕적 우월감 버릴 것 △대한민국을 긍정할 것 △세계주의 노선을 취할 것 △민주주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것이다. 필자는 4가지 주장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

주대환의 이러한 주장은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파의 합리적 핵심을 '적극 수용'함으로서 그들의 하부기반을 '적극 무력화'시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우파에게 빼앗긴 이슈의 선점을 재탈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나머지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듯 하고, 이중에서 ‘세계주의 노선’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자.

어쩌다가 우파는 세계주의를 제창하고, 좌파는 민족주의를 제창하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예컨대 당내 좌파들은 그간 다자간 무역체제인 WTO도 반대하고, 쌍무 무역체제인 FTA도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자본주의하에서’ 무역협정은 전부 반대한다는 것인지, 그리하여 자급자족과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인지 자신의 대안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9. 전진은 말하지 않았지만, 주대환은 말했던 것 - ‘정치전략’에 관하여

91년 주대환의 신노선은 이념적으로는 PT독재론과 폭력혁명의 폐기였지만, 실천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조합에 기반한 진보정당, 즉 ‘노동당’ 노선의 채택이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었다.(중앙파이건, 국민파이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주대환의 안타까움과 무관하게 아무튼 노동당 노선의 실체였던 민주노동당 실험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에 대해 김수민(Lollapalooza)은 “1900년산, 낡은 영국제 시계를 버려라”라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이장규도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주대환이 ‘뭘’, ‘왜’ 고민하고 있는지조차 여전히 독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주대환이 영국노동당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단지 조직된 노동조합에 기반한 진보정당 모델을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성을 가졌던 것은 주대환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두베르제의 법칙'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가 없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근본적으로 양당제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제3세력은 '일시적' 흥망성쇠를 할 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한 유일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영국노동당 이외에는 없었다.

요컨대, 주대환이 지난 수십년간 묵직하게 고민했던 근본 화두는 소선거구제라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제약조건 속에서 진보정당의 지속 생존이 가능한 물질적 조건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가 찾은 해법은 민주노총당 모델과 영남 진보벨트에 기반한 '지역근거지론'이었다.

주대환은 남들이 모두 탐낼 법한(?) '노른자위' 지역구에 해당하던 창원이라는 지역구를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을 '초빙'하며 기꺼이 내줬다. 그리고 선거운동 자금까지 마련할 정도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진정 존경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영혼과 온몸을 다 바쳐 자신의 노선에 '정직'했다.

혹자는 이에 대해 현재 존재하는 정당투표제에서 위안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례의석이 54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정당투표로 원내교섭단체(20석)를 만들려면 40%에 육박하는 정당지지율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40%의 지지라면, 차라리 대선이 빠를 것이다.)

심지어 언론과 식자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노회찬/심상정 같은 진보가 배출한 최강의 정치스타들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뜻의 은어-편집자) 같은 상대후보들에게 박빙의 승부 끝에 떨어지는 판국이니 다른 사람의 지역구 돌파가 난망한 것은 자명할 뿐만 아니라 노/심의 지역구 돌파 역시도 여전히 낙관할 문제가 아니다. 

10. '경우의 수'로 살펴보는 - 진보신당의 선택 가능한 정치전략 4가지

총선 직후 필자의 화두 역시도 주대환의 그것과 같았다. 진보신당의 생존 관련 '경우의 수'를 상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1안) 좌파 운동권들이 늘 그래왔듯이 '못 먹어도 Go!'를 하는 것이다. 독자노선이다.

2안) 영국 페이비언 그룹의 '초기' 자유당 침투 이후, 이후 영국노동당 합류처럼 초기에는 민주당으로 침투해서 역량을 키워 향후 독자적 사민당 깃발을 띄우는 것이다.

3안)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 정치가 있다. 1906년~1917년 영국노동당의 경우, 1920년대 스웨덴 사민당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4안) '색깔있는 야당재편론'이 있다. 민주당 왼쪽을 포괄해서 새로운 대안 야당을 창당하여 단박에 '잔류 민주당'을 박살내고 양당제의 한축으로 도약하는 방식이다.

필자의 경우 이중에서 명백한 것은 1안)은 실패가 판명난 것이라는 생각하는 입장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은 3안에 기초하여 궁극적으로 '초록+복지'의 컨셉 하에 '색깔 있는 야당재편'을 이룩하는 것이다.(즉,4안) 이념적 모양새로만 치면 김수민이 언급했던 '푸른 사민주의'(또는 녹색당과 사민당의 절충)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 따라 견해가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본디 총노선 혹은 ‘전략’이란 개념은 우리의 현실을 둘러싸고 있는 주어진 '객관적 제약조건'을 모두 감안한 상태에서 탈출구 또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략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객관적 제약조건을 얼마나 통찰력 있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이며, 동시에 한정된 주체적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전략의 검토란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진의 총노선은 반대할 이유조차 없는 ‘좋은 말’들을 모아놓은 것인 반면, 주대환의 글에는 ‘정치 전략’이 제출되어 있다. 주대환의 ‘08년판 신노선’은 몹시 논쟁적이지만 또한 그가 온몸으로 투자했던 35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 여전히 몹시 묵직하다. 

11. '비지론'과 '독자론'을 넘어 - 영국노동당과 스웨덴 사민당의 '헤게모니 정치 전략'

1900년에 창당된 영국노동당의 전신이었던 독립노동당의 케어 하디는 마치 91년 창당된 한국노동당 멤버들이 그러했듯 초기에는 일관되게 자유당과 선명히 대비되는 '독립' 노선을 강조하였다. 창당 이후에도 영국노동당의 국회의원은 1명~4명 수준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창당 이후 '정치적 실체'가 되자 케어 하디는 전략적 실용주의에 입각한 헤게모니 노선으로 전환한다.

바로 그 귀결이 자유당과 노동당이 서로 상대방이 강한 지역에 대해서는 공천을 자제하는 1903년 보궐선거 선거협약과 1906년 총선에서의 연합공천이었다. 특히나 1906년 맥도날드(노동당)-글래드스톤(자유당) 협약에 입각한 연합공천은 노동당이 '비약'하는 계기가 된다. 50명이 출마하여 무려 29명이 당선되는 일대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00년에 노동자대표위원회(LRC)라는 임시 명칭으로 출범했던 영국노동당은 29명의 의원이 생긴 이후에 비로소 '노동당(Labour Party)'이라는 정식 당명을 채택할 정도였다. 이후 1906년 연합공천을 통해 '비약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 영국노동당은 1930년대 결국 '자유당'을 잡아먹고 노동당-보수당의 양당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후에는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전시내각에 적극 결합하면서 '국정 경험'을 쌓게 되고 바로 그러한 신뢰에 기반하여 1945년 총선에서 영국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과반 집권'을 하게 되는 일대 쾌거를 하게 된다.

즉, 영국노동당 성장의 역사는 창당까지는 독자적 결집을 강조하다가 막상 창당이 된 이후에는 전략적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1906년 연합공천과 1920년대 선거권 확대, 1945년 전시내각을 통한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비약적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1889년 창당 시점부터 독일 베른슈타인의 개혁주의 노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스웨덴 사민당 발전의 역사는 '전략적 사고'가 얼마나 위대한 결실을 보여주는지 대표적 사례이다.

사민당의 역사는 '전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17년 스웨덴 사민당은 자유당과 최초의 연립내각을 구성한다. 이로 인해 당내 청년좌파들이 반대하여 무려 1만명이 탈당하고, 15명의 당 소속의원이 이탈할 정도였다. (스웨덴 인구가 현재 9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탈당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음. 현재 한국으로 치면 거의 10만명에 달하는 탈당 규모인 셈.)

그러나 스웨덴 사민당의 전략적 판단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으며, 이후 꾸준히 '전략적 관제고지'에 해당하는 보통선거권의 확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1932년 총선을 통해 스웨덴 사민당은 단독집권에 성공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유당을 잡아 먹어버린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중요한 고비마다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옥같은 '전략적' 결정을 하면서 1976년까지 민주적 장기집권에 성공한다. 

12. 역사적 교훈 - "세력의 크기"가 아니라 "노선의 올바름"이 집권을 좌우한다

필자는 거의 대체로 주대환의 논지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진보신당의 당원이냐 아니냐 이외에는 별로 없는 듯 하다. 그가 08년판 신노선을 제출했듯이, 난 '독자노선 반대론자'로 전향했다.

소선거구제가 관철되는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합정치에 기반한 초록+복지 컨셉의 '색깔있는' 야당재편론이 필자의 기본입장이다.

영국노동당의 1906년~1917년 자유당과의 연합공천과 1940년대 보수당과의 전시연립정부는 모두 '소수파'일 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딛고 상대방을 잡아먹었다. 1930년대 선거권의 꾸준한 확대에 힘입어 자유당을 별볼일 없는 제3당으로 만들고, 보수당의 전쟁영웅 처칠을 격퇴할 정도였다.

스웨덴 사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17년 자유당과의 소수파 연립정권 참여 이후 '전략적 관제고지'에 해당하는 보통 선거권을 꾸준히 확대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에서 소선거구제가 존재하는 한, 주대환이 절절하게 경고하고 있듯이 결코 '두베르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취할 가장 합리적 방법은 51%를 얻기 위해서는 49%를 과감하게 내어줄 수 있는 '헤게모니론'에 입각한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연합정치를 구사할 수 있었다면 심상정/노회찬/박용진/신장식 이런 이들은 몹시 승산이 높다. 소선거구제 그 자체가 '비판적 지지지' 제도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덧붙여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확립해야 한다. 세계 정당사는 세력이 큰 정당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노선이 올바른 정당이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 출발은 무엇보다 낡은 것과는 '명백하고', '단호하게'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북주의 논란과 분당을 통해 시대착오적인 NLPDR과 단절했다면, 그들의 벗이자 일란성쌍둥이인 PDR론과도 명백하게 단절해야 한다. 향후 진보신당 창당 과정을 통해 △PT독재론 △폭력혁명 △중앙집중계획경제 △시장/상품 불인정 등등을 강령 또는 창당선언문의 형태로 공식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이는 말로만 사회주의 이념조직을 외치고 있는 덩치 큰 전진이 아직도 '조직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인데, 주대환이 17년 전이었던 91년에 했던 것이며, 조봉암이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에 신문광고를 통해 1946년에 했으며, 1956년 진보당 창당선언문에서는 두 번째 항목으로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 독재도 반대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체제를 확립"하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전진 역시도 그간의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는 '유령 사회주의'를 중단하고, 위 테제에 대한 공개 폐기를 동의함으로서 자신들의 표현처럼 명실상부한 '민주적' 사회주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00년전 코민테른으로부터 유래된 운동권의 오랜 사투리이자 NL과 PD 용어 그 자체를 '굿바이 레닌'과 함께 역사 저 멀리~ 되돌려 보내야 할 것이다.

2008년 09월 07일 (일) 10:06:53 최병천 webmaster@redian.org

작성일 : 2008-09-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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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민
08-09-12 01:27  
민주당까지아우루는 전반적인 중도진보 재편에관한 내용의 중심에 대해 오해의 소지와 논란의 중심이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대환 전의장과 항상적으로 얘기했던 부분의 요지 ...현재의 영국노동당의 현상에대한 분석이 아니라 역사적 고찰을 통한 진보진영의 한번의 탈바꿈에 대한 진보 보수구도의 역사적재편의 방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노동당은 보수의 선거전략속에(일정정도 보수의 인정)일정정도의 지분을 확보해나가 마침내 의회의다수당으로 집권할수있었던 과정에대한 신노선의 필요성에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병천동지가 직접적으로 적었네요.
할말은 많은데 진중권 강연회 준비와 현실적인 춘천당협의 위상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집중하는게 더 적합하다 생각하여 논쟁을 만들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참조 위글 최병천의 글중>

주대환이 영국노동당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단지 조직된 노동조합에 기반한 진보정당 모델을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성을 가졌던 것은 주대환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두베르제의 법칙'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가 없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근본적으로 양당제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제3세력은 '일시적' 흥망성쇠를 할 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한 유일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영국노동당 이외에는 없었다.

요컨대, 주대환이 지난 수십년간 묵직하게 고민했던 근본 화두는 소선거구제라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제약조건 속에서 진보정당의 지속 생존이 가능한 물질적 조건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가 찾은 해법은 민주노총당 모델과 영남 진보벨트에 기반한 '지역근거지론'이었다.
인샬라
08-09-12 12:22  

최병천의 정치전략에 동의한다.

못먹어도 GO 전략은 역사적으로는 레닌주의의 '주타방'전술에서 유래 하는데 이 전술은 무조건적인 독립추구가 아니라 '아타간의 역관계'에 기반한 전술이다.
정치전략으로서 연합, 제휴, 독자생존 등의 전술은 아타간의 역관계, 정치환경, 역사적 조건등을 면밀히 고려해서 판단 할 일이다.

사실 한국 정치 상황에서는 정치적으로 '수절'하는 문제제기 정당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독자적 진보정당을 목표로 활동하는 정당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수권을 목표로 한다면 전술의 유연성을 채택하고 그런 전술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진보정당 또한 있어야 한다.

이 두 세력이 서로 다투거나 배제 할 필요 없다.
서로의 역사적 과제를 인정하면서 비판하고 상호발전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제도환경과 역관계를 보아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을 보아도,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보면 진보를 재구성해서 정치판을 헤게모니적으로 장악해가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고 그것은 또한 실현 가능한 길이다.

 



 

 

산등성이
08-09-12 15:41  
처음 접해봅니다.
강원지역에도 사민주의와 현실적 접근을 사고하려는 분들이 계서서 매우 기쁨니다.
저는 잘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전에 최병천,홍기표,허성민등과 한두번의 대화에서 진보의 방향에대해 많은 생각을 가진적이 있습니다.
여기 인샬라님 또한 같거나 전술적 동의를 하는분인거 같습니다.우리주변에서 합리적 진보의 방향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점차적으로 많아지고 당연히 그렇게 간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강원도는 아니지만 가끔접해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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