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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뉴타운과 ‘무지개타운’
‘부수고 다시 짓는’ 방식 vs ‘있는 것을 재단장하는' 방식
경향신문

어릴 적 서울 변두리의 작은 기와집에서 살았다. 대문을 열면 2평 남짓한 대문간이 있었고, 이 곳에서 구슬치기 등 놀이를 한 기억이 난다. 대문간을 지나면 5~6평쯤 되는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에 포도나무가 있었는데 여름철이면 익지도 않은 포도를 몰래 따 먹다 부모님께 혼이 나곤 했다. 마당 주변으로 방과 부엌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이 곳에 3가구가 세들어 살았다.

정면 대청마루 좌우에 안방·건넌방, 그리고 건넌방 옆에 골방이 하나 더 있었다. 이 곳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건넌방과 골방엔 하숙생들로 가득 찼다. 어머니가 솥 가득히 밥을 지어, 아침상을 몇 차례나 올리고, 도시락만 대여섯개씩 쌓아 마루 모퉁이에 놓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40~50평쯤 되는 이 집에 필자 가족(부모님과 2남1녀, 큰누이, 둘째누이는 출가)과 세들어 사는 3가족(10명), 하숙생 4~5명 등 모두 20명이 모여 살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다보니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침이면 뒤채 우물터는 밥짓는 엄마·아줌마들, 이 닦고 머리 감고 세수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때로 벌어지는 술판,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아줌마’들의 소근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당시 인기가 높던 TV드라마 ‘여로’를 방송하는 날이면 대청마루는 물론 마당까지 우리 가족과 세들어 사는 사람들, 이웃들로 가득 찼다.

개발 않고도 주민 삶터 바꾼 대전

한 번은 오줌을 싼 죄로 새벽녘 셋방 할머니에게 부지깽이로 얻어맞기도 했다. 동네 아이와 싸움을 하다 얻어맞고 들어오면, 하숙하던 형이 “누가 때렸냐”며 “앞장 서”라고 할 때는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일상의 번잡함이 지루하지 않았던 나날들. 그러나 이런 ‘시간들’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 앞 공터(내겐 운동장이었다) 옆 실개천 복개공사를 하더니, 어느 새 ‘공터’는 새로운 집들로 가득 찼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가족은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내 살던 그 곳은 ‘개발 바람’이 불면서 사라졌다. 당연히 그 곳에 살던 ‘하숙생 형’들, 부지깽이 들며 호령하던 할머니, 새댁 아줌마, ‘정씨 아저씨’ 등은 뿔뿔이 헤어졌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후 나는 ‘이웃’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살아왔다.

최근 대전시가 빈민촌을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무지개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경향신문 9월25일자 9면 보도). 그런데 그 내용이 참 반갑다. 대전시는 빈민촌의 깨지고 부서진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낙서로 가득찬 벽을 다시 칠했다. 볼품 없이 무너져내린 담장 대신 예쁜 울타리로 단장했다. 집 내부도 수리해주고, 칠하고, 싱크대도 갈아주는 작업이 이뤄졌다. 낡은 골목길도 정비하고 멋진 ‘덮개’를 씌우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이 추진하고 있는 ‘낡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방식 대신, ‘있는 것을 재단장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무지개프로젝트 덕분에 대전 동구 판암1·2동 주공아파트, 대덕구 법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던 서민들은 이사를 가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여전히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들은 정든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것이다.

서울시내 35곳에서 뉴타운이 개발되고 있다. 길음·은평 뉴타운은 이미 입주했거나 입주 중이다. 그런데 이 뉴타운사업으로 인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뉴타운 예정지에 살던 김씨 할아버지, 이씨 할머니, 강씨 아저씨, 박씨 아줌마…. 이들은 턱없이 낮은 보상금, 턱없이 높은 ‘분양가’로 살던 집에 살 수가 없고, 꾸려가던 가게를 더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뉴타운 개발로 주변 집값마저 올라 가족 모두가 갈 곳이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길음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은 살던 동네에서 떠난 것이다.

뉴타운 고집하는 서울이 배워야

국토 곳곳에 있는 낡은 주택 전부를 무지개프로젝트 방식으로 재단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서민들을 살던 곳에서 내쫓는 재개발·재건축만 고집하는 것은 곤란하다. 서민들에게 좋은 보금자리란 ‘잘 꾸며진 새 아파트’가 아니다. 부모형제, 이웃들과 정겹게 이야기하고, 쉬고, 잘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서민들이 원하는 보금자리인 것이다.

<경향신문 김종훈 전국부장> 2008년 09월 28일

작성일 : 2008-09-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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