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 ‘민중의 집’으로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미술사로 배우는 영어교실’이 있는 날.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상암동 영구임대아파트의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수업은 마티스·피카소·인디아나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된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김앨리스씨가 교사다. 김솔민양(13)은 “엄마가 소개해줘서 왔는데 영어도 배우고 그림도 보고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영어도 배우고 미술도 익히고 서울 마포구 일대에 사는 청소년들이 지난 14일 망원동 ‘민중의 집’에 모여 대학강사 회원이 가르치는 ‘미술사로 배우는 영어’ 강좌를 듣고 있다. 남호진기자

‘민중의 집’은 지난달 19일 문을 연 지 꼭 한달째 됐다.

마포 민중의 집은 대한민국 1호점이다. 원래 민중의 집은 서유럽에서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 시민단체들이 시작한 생활진보를 위한 지역거점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1층 술집, 2층 교육관, 3층 사무실로 구성된 전형적인 유럽식 민중의 집과 달리 마포 민중의 집에는 술집이 없다.

민중의 집 역사는 2006년 지역운동 및 진보운동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연구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해말 ‘건립준비위’를 구성하고 올 6월 마포구 망원동에 2층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대학교수·강사, 부동산중개업자, 술집 사장, 의사·약사·한의사, 대학생 등 다양한 직종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랜드노조, 마포구청공무원노조, 가든호텔노조 등 15개 노조·진보신당 당원·문화연대·출판사·상인연합회 등이 단체로 참여하고 있고 개별적으로 가입한 회원도 250명이 넘는다. 이들이 십시일반 매달 내는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중의 집은 이달말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8월말부터 가든호텔 요리사들은 지역주민과 회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화요 요리강좌’를 연다. 공무원들은 9월말부터 퇴근 후 세무·사회복지 상담을 시작한다. 성인문학 강좌와 중국어 교실도 준비돼 있다.

구체적인 지역활동도 벌일 계획이다. 9월말부터는 동네 불만 사항을 주민들이 노래하는 ‘불만 합창단’이 데뷔한다. ‘동네나눔장터’를 열어 인근 농수산물센터에서 제공하는 야채를 무료로 나눠 줄 계획도 잡혀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주민과 사회·시민단체의 관심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주민 중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진보신당 부산시당 당원들은 1박2일 견학을 왔다. 일본 도시공학 전문가들도 방문했다.

언뜻 기존 생활강좌 및 지역활동과 유사해 보이지만 민중의 집 운영원리는 색다르다.

정경섭 대표는 “민중의 집은 생활문화센터가 아니라 경쟁과 효율의 자본주의적 논리를 벗어나 상호부조를 통한 새로운 네트워크 창출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철학과 교수는 철학을 가르쳐주고 상용직 노동자는 하수도를 뚫어주면서 서로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사회적으로 결정된 위계질서를 넘어 민중의 집에서 역할을 통해 엑스트라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건설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병한기자>
<경향닷컴에서 펌>

민중의집 홈페이지 http://jinbohouse.net/

작성일 : 2008-08-18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