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 낙선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 “분당 후회 안해…낡은 물로 물레방아 못 돌려” “난 ‘엔엘피디’…어느 쪽이건 합리적인 것 차용”
	허재현 기자

» 노회찬 전 의원이 서울시 노원구의 자신의 집무실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9일 치러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의 눈길을 끈 지역구 중 하나는 단연 서울 노원병이었다. 전통적으로 서민층이 두터웠던 이 지역에도 선거를 앞두고, 뉴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거기에 진보신당의 ‘조기 운동권파’ 노회찬 후보와 한나라당의 ‘조기 유학파’ 홍정욱 후보가 맞대결을 벌이면서 선거판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래서 이 지역은 앞으로 4년간 민심이 어느 쪽으로 쏠릴 지를 판단할 가늠자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저울추는 결국,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노 후보의 낙선은 ‘진보’를 정치적 가치로 여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서 ‘말발 좋은 진보 스타’ 였던 노회찬의 낙선은 노동진영의 패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17일 그를 찾았다. 17대 국회의원 노회찬의 얼굴은 더 거무틔틔해진 인상이었다. 지쳐보였다. 노 의원은 인터뷰 도중 가끔씩 웃기도 했지만 평소 활기찬 모습과 달리 차분해져 있었다. 4년 전 그는 “(국회 안에서) 이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지금은 이런 질문을 받게 됐다. “(국회 밖에서) 이제 무엇을 할 거냐.” 달라진 질문처럼 그의 처지도 변해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선거 져 아쉽지만 희망을 봤다” -선거 치르고 나서 지금까지 뭘 했나?

-선거 때보다 더 바쁜 것 아닌가?

=선거 때 못지 않게 바쁘다.

-건강은 어떤가?

=선거 한번 더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만감이 교차한다. 예정된 패배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진 것 때문에 분명 아쉽긴 하다.

-‘그래도 희망을 봤다’고 언론과 인터뷰했던데?

=나도 놀랄 만큼 진보의 희망을 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지연, 학연, 지역패권주의에 휘둘려 투표한다는 것은 일견 사실이지만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낀다. 날 지지한 유권자가 40%인데, 석 달 전 대선에서 이 지역의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3%에 불과했다. 날 지지한 사람의 80% 이상이 수십 년 간 민주당이나 한나라당만 찍어 왔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과연 내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표를 줬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서민을 위해 일을 해 온 사람, 앞으로도 서민을 위해 일을 잘 할 사람이기 때문에 찍었다. 그것을 확인한 선거다.

[인터뷰] 낙선한 ‘진보 스타’ 노회찬

“진보를 자칭한다고 찍어주지 않는다”

-보수정당의 후보들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했다는 것이 언론의 총선 분석인데, 그와는 너무 다른 평가 아닌가?

=선거의 전체 결과는 상당히 완고한 보수파들이 70% 이상을 점하는 정치 지형상의 후퇴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이 보수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 보지 않는다. 진보에 대한 갈망은 점진적으로 높아가고 있는 것이라 본다. 선거에서 난 졌다. 인정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이 보수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가 없었던 것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제대로 된 진보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통해 확인됐다. 과거의 낡은 정치적 잔재들은 새로운 요구 앞에서 급속히 허물어질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낀다.

-노회찬 후보의 득표율은 노원병에서 40%를 넘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구 진보신당 후보들의 득표율은 그보다 한참 낮았다. 노원병 지역구에서의 득표율을 진보의 희망으로 연결하는 것은 좀 지나친 해석은 아닐까? 노회찬에 대한 인기가 높아서 이런 득표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

=물론, 그런 해석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보를 자칭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찍어주진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진보로 검증된 사람으로 여겼던 거다. ‘내가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 앞에 진보를 자칭하면서 나타나지 않은 정치 세력이 어디 있나. 서민을 위하지 않는다는 정치 세력이 어디 있나. ‘우리는 저 쪽과 다른 진보다’는 일방적 주장만으로는 안 통한다. 앞으로도 안된다. 저 사람들은 ‘진짜 서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지켜봤다면 그럴 때 오히려 진보를 찾는다. 다른 지역에선 그것이 안된 거다. 하지만 분명 감춰져 있던 잠재적인 가능성은 있었을 것이다.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당황했던 것일까. 그의 미간에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그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도 흔들림없이 답변했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 것인지 답변의 길이는 좀 길어졌다. 핵심만 추려서 전달한다.

	» 진보신당 노회찬,심상정 공동상임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이 9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 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패배의 원인은 “뉴타운, 민주당 득표력”

-어쨌든 낙선한 것은 분명하다. 낙선의 원인은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대표적으로 뉴타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본다. 막연한 기대감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민주당 후보의 득표력이다. 지난 13번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11% 였는데 막판에 16%가 나왔다. 그 표를 끌어오지 못한 게 패배의 원인이다.

-노원구가 뉴타운으로 지정 되는 것이 실제 주민에게 큰 도움이 안된다고 보나?

=도움이 되는 주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주민이 있다. 뉴타운 대상지역에서는 도움 되는 주민들이 굉장히 적다. 이건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원주민 중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열 명 중 한 명이다.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에겐 무조건 이익이다. 싼 값에 집 사서 두 배, 세배 높여 팔면 이익이 되니까. 하지만 실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갑자기 1억 원씩 더 주고 이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겠나. 이것을 오세훈 시장은 어느 정도 안다고 본다. 뉴타운으로 지정되면 낡은 주택이 번듯한 아파트로 변하니까 공간은 좋아지지만, 그 공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좋아지는 게 아니다.

-홍정욱 당선인을 향응 제공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어느 정도 내용이 확보된 것인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다 확보했다. 홍정욱 후보가 밥 산다기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한 음식점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백여 명 이상 나눠 앉아 있었고, 한나라당 관계자가 ‘미리 와서 박수 쳐달라’고 부탁도 하고, 실제 홍정욱 후보가 왔던 정황이 있다. 이건 분명 조직적으로 제공된 식사다. 제보자가 있던 방의 동영상까지 있다. 이 식사를 누가 제공했는지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민노당과 통합?…“낡은 물로 물레방아 돌릴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둘로 갈라지면서 진보정당이 원내 진출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분당에 대한 후회는 없나?

=전혀 없다. 갈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과연 더 나았을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이번에 얻은 지지율의 합보다 훨씬 더 적게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지지를 더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민노당이 2월 당 대회에서 혁신 안을 받아들여 정말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가 될 수 있는 지지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낡아졌길래 혁신안까지 필요했던 것인가. 종북주의가 과연 큰 문제였나. 자주파와 평등파 세력의 계파 다툼으로 보는 외부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편향적 이미지는 일부 언론에 의해 과도하게 키워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언론 탓만 해서는 안된다. 북한과 관련해 무조건 감싸는 듯한 것은 분명 있었다. 모든 것을 북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고 볼 순 없지만 무비판적인 것은 분명 있었다. 대기업 노조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도 더 어려운 노동계층으로부터 멀어진 원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선 전혀 지지 받지 못하고 민주노총에 기계적으로 의탁한 점이 있었다. 또 진보정당이라고 하면서 서민들의 힘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비중 있게 하지 않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활동을 더 앞세웠다.

-명분이 있더라도 총선을 코 앞에 두고 분당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 아니었나?

=현실 정치 차원에서 보면 무리한 것이다. 법정 선거운동기간 10일 전에 창당한 것은 사실 이번 총선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총선 이후를 겨냥한 분당이었다.

-지지부진한 진보세력이 유의미한 활동을 하려면 장기적으로 합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다시 합칠 생각은 없나?

=장기적으로 보면 진보정당은 하나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단기적으론 그럴 가능성이 적다. 세가 불리하니까 합해질 일은 없다. 민주노동당이 계속 낡은 모습을 고수한 상태에서 합치면 과거의 민노당으로 돌아간다. 낡은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 노회찬 전 의원이 서울시 노원구의 자신의 집무실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진보신당, 지역에 뿌리 내리기 활동부터”

-진보신당이 원외 정당이 됐다. 불안하지 않은가?

=진보정당은 원외 정당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원외정당으로 출발하는 것이 꼭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다. 앞으로 선거 준비를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진보정당이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그런데 낙선한 후보들은 대게 그런 식으로 ‘지역 주민을 많이 만나며 민생을 챙기겠다’고 말한다. 사실 물린 답변이다. 구체적으로 원외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면 일이 년 안에는 안된다. 예를 들어 한 보수정당의 지역조직부장은 한 직책만 15년에서 20년 맡은 사람도 있다. 한국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을 보면 그 어느 보수 정당의 지역 조직보다 당원들의 참여가 높다. 대부분 진성당원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 지역의 통반장이 누군 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서 자기들끼리만 뜨거웠다. 이런 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성과 위에서 기반이 만들어진다. 활동의 성과를 계속 축적해야 한다. 우린 시작은 늦었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난 ‘엔엘피디’…어느 쪽이건 합리적인 것 차용”

-이번 총선과 직접적 관계 없는 질문 두가지만 하겠다. 언론에서 노 의원을 평등파로 분류하고 있는데 동의하나?

=난 내가 평등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어느 한가지로 재단하기도 어렵다. 농담으로 난 ‘엔엘피디’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합리적인 것이 있으면 차용한다. 지금 나는 당내에서 어느 정파 쪽 사람이 아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성특검이 종료됐다. 당사자들은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고 삼성은 쇄신안을 내놨다. 어떻게 보나?

=특검은 삼성을 세탁해줬다. 결국 삼성이 부당하게 확보한 재산을 합리화시켜줬다. 그래서 나온 게 쇄신안이다. 이건희, 이학수가 퇴진한다고 하는데 이건 이건희 일가와 이재용을 위해 예정됐던 일이다. 문제의 근원이었던 3%의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총수지배구조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전략기획실을 없앤다고 하지만 지배체제가 그대로라면 그 지배체제를 지원하려는 또 다른 이름의 본부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다.

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 인터뷰를 마치고 패배한 수장이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일은 분명 달갑지 않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패배의 아픔을 삭이고 있는 사람에게 ‘졌는데 소감이 어떠냐’를 묻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노 의원은 그리 절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친 뒤 당원들과 모임을 연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작은 포장마차에서 한 20대 여성 지지자가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를 찾아오는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그가 느끼는 희망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노 의원과 나눈 술잔이 대여섯 잔을 넘길 무렵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포장마차의 천막이 날아갈 듯 거셌다. 노 전 의원은 갑자기 일어나 천막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오늘 밤에 돌풍이 분다는 날씨 예보는 챙겼었는데, 이거 바람까지 야당을 탄압하네. 허허” 그의 익살은 여전했다. “날씨까지 꼼꼼히 챙기시네요”라고 물었다.“그럼요. 먼 옛날,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돌보던 제사장들은 꼭 날씨부터 챙겼거든요.” 앞으로 국회 밖에서 고된 4년을 보내야 할 노 의원이 무엇을 걱정하며 보낼지 얼핏 비친 순간이었다. 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작성일 : 2008-04-29 0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