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제, 어떻게 할 것인가? 
- 이명박 정부의 반민중적 교육을 넘어서기 위한 전교조의 과제

기득권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교사 집단과 전교조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중산층이 대거 몰락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어 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요즘은 폐업이 워낙 많아 다시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가 넘쳐나게 되었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선호 직업인 의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교사도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게 되었지요. 워낙 안정적인 일자리가 드물다 보니, 또 ‘큰 부자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안정적인 중산층은 시기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희한한 사회심리적 메커니즘 하에서 교사는 어느새 ‘기득권 세력’, ‘개혁의 대상’이 돼버렸습니다. (‘진짜 센 놈들’인 주식시장의 큰 손, 수백억대 부동산 부자, 연봉 133억의 삼성전자 사내 이사 등은 부러움의 대상일 뿐, 대중의 미움을 받는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예전에는 평범한 이웃이었던 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무원들, 교사들이죠.)   

교사들 중에서도 특히 전교조 교사가 더 미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인터넷 댓글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작년에 '반(反)전교조'를 기치로 내건 공정택이 당선된 것만 봐도 전교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정권과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 탓이 큽니다. 거의 ‘전교조 죽이기’에 가깝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 운동 주체의 측면에서, 전교조가 이러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은 없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의 전교조는 ‘촌지거부 운동’ 등 참교육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학부모 및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었지요. 그런데 합법화 이후 외연이 확대되면서 초기에 비해 ‘학생 인권의 문제’나 ‘학교 내 비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교권 향상’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듯한 인상을 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생 인권 등 참교육 운동을 도외시한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교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은데...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참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느낌까지 드네요. 

이명박 정부의 약한 고리, 교육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교육은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은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의 공약으로 당선됐지만, 오히려 상황은 정반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몰입교육 ‘오륀쥐 파동’이 있었고, 작년에는 0교시, 우열반, 야간자율학습 등에 대한 규제를 푸는 학교‘자율화’ 조치가 있었지요. 또 국제중 설립 강행, 일제고사 부활과 교사 파면/해임 등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대학자율화를 내세우면서 벌써 연세대는 본고사 부활을 예고했고, 요즘은 학업성취도 평가 공개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입시명문고 300개가 생겨나게 될 것이고 사실상 고교평준화는 해체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말 무식하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올 신년연설에서도 “교육개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낼 것”이라고 밝혔었지요. 이명박의 이런 미친 짓거리는 결국 사교육비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작년 경제상황이 안 좋았는데도 사교육비는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이는 사교육 관련 작년 통계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가 바로 교육입니다. 사실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를 금지하는 소위 3불 정책은 국민의 지지가 상당히 높은 정책입니다. 이번에 고려대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시행하자 이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은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심지어 조중동조차 이를 옹호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반민중적’ 교육정책을 미친 듯이 밀어붙이고 있으며, 앞으로 몇 년간 그야말로 ‘교육대란’이 예상됩니다. 성적으로 한줄 세우기, 학교서열화, 사교육 팽창, 교육 양극화... 결국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의 반격이 필요하다

이제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이 반격을 시작해야 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진보적 교육운동의 핵심은 전교조입니다. 따라서 전교조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명박이 불도저처럼 무식하게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에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고 여론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명박이 계속 이렇게 무식하게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의 불만은 고조될 것입니다. 따라서 전교조가 이명박식 서열화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잘 대변해서 앞으로의 국면을 잘 돌파해 낸다면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 교육이 망가지는 것을 막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원평가제 대응, 이대로 하면 희망은 없다.

그러나 암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원평가제입니다. 참여 정부 때 교원평가제 도입에 결사 반대하면서부터 전교조에 대한 여론이 더욱 더 안 좋아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 밥그릇 챙기는 데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조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이지요. 실제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교원평가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9월 교육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2.1%는 교원평가제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교사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신뢰에 도움이 되고, 교사의 수업 수준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찬성 이유였습니다. 또, 작년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이 여의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학부모의 65.7%(적극 찬성 42.6%, 찬성 23.1%)가 교원평가제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교원평가제가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것은 이처럼 교원평가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매우 높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미 교원평가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습니다.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대부분 교원평가제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전교조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이명박은 이미 내년 3월부터 교원평가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려고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전교조는 그동안 “교원평가제 결사 반대”를 외쳐 왔습니다. 실제로 교원평가제는 문제가 많습니다. 마치 이제까지 교사들이 평가를 받지 않았던 것처럼 오해하는 국민들도 많은데, 교사들은 해마다 근무평정 제도를 통해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기존의 근무평정제도는 “소수점까지 계산하는 치열한 점수 경쟁과 교장 1인이 승진 점수를 좌지우지하는 불합리한 관행에 의한 제도”입니다. 형식적으로야 교장이 40%, 교감이 30%, 동료교사가 30%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교장의 뜻대로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과급 평가도 따로 받습니다. 여기에다가 새로 도입되는 ‘교원평가제’(정식 명칭은 ‘교원능력개발평가’)까지 받게 된다면 교사들은 3중 중복평가 속에서 ‘평가 노이로제’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능, 내신, 논술/본고사 죽음의 트라이앵글, 교사들은 근무평정, 성과급, 교원평가 죽음의 트라이앵글인 셈이지요.) 또한 이러한 평가제도들은 결국 교원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입시교육 체제 하에서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원평가가 갖고 있는 한계는 분명합니다. ‘입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교과 지식을 얼마나 기능적으로 잘 가르치는지’가 평가의 주요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기투표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원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삶이 크게 개선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교원평가제가 우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시장의 재편, 대학서열구조의 해체(혹은 완화)가 없다면 입시 위주의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힘듭니다.) 아무튼 개인적인 견해로는, 평가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론이 좋지 않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라면 그것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나쁜 것’으로만 보기에는 좀 만만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교원평가제’가 기존의 ‘근무평정제도’ 및 ‘성과급 평가’와 다른 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평가’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장, 교감, 동료교사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도 평가한다는 것이 교원평가제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바로 이게 먹히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국민들의 찬성 여론이 높은 겁니다. 즉,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배제되었던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일정 부분 반영된다는 것이 교원평가제 도입의 강한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흔히 교육의 3주체를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하는데, 그동안 교육의 주체로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던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가 교육현장에 반영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교사의 교육활동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학생이라는 측면에서, 교원평가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마냥 반대만 외치다가는 고립되기 쉬운 상황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내용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데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수요자인 학생에 의한 교사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교육계에서 최고 인기 강사였던 교육평론가 이범 씨가 예전에 한겨레 칼럼에서 시사한 바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그들의 시장주의적 교육 정책이 국민적 반발을 사게 될 때,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 국면을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교원평가제로 교육수요자(학생, 학부모) vs 교육공급자(교사)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의 ‘시장주의적·반민중적 교육 정책’을 관철하려 할 것입니다.

전교조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반대, 교원평가제 반대”를 외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세적인 대응이 국민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전교조 지도부가 겪어왔던 고뇌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국민들 눈에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친 것이지요. 전교조는 교원평가 법제화 이전에 “자발적이고 심층적인 교원 연수체계, 교원양성 제도의 획기적인 개선, 그리고 교과전담,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교원1인당 학생수 감소 등 교육 환경 여건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대응해서는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교사들이 학생ㆍ학부모들로부터 평가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원평가제 자체는 찬성한다고 말하기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의 첫걸음은 대중의 눈높이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전교조와 거의 비슷한 입장을 취해왔었던 참교육 학부모회조차 교원평가제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교육 환경 여건 개선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교원평가제 도입, 절대 안 된다”는 태도가 아니라, “교원평가제, 좋다! 그러나 정부의 교원평가제 안(案)은 매우 미흡하다. 학생들에 의한 평가가 중심이 된 교원평가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공세적으로 외치면서 학생/학부모의 지지를 획득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 교원근무평정 제도와 교원평가제를 융합하여 ‘교장이 평가하는 비율’을 낮추고 ‘학생이 평가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교육재정 확보 등 교육환경 개선을 해 달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교조가 ‘학생 주도의 교원 평가제’ 안(案)을 마련해서 입법청원이라도 하면서 대응해 나간다면 전교조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전교조는 현재 “교육주체가 학교운영 등에서 실질적인 주체가 될 때 (교원평가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들에게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명분’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전교조가 교원근무평정 제도를 비판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무평정 제도보다는 ‘교원평가제’에 대해 더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원평가제의 긍정적 측면-학생의 발언권 보장-에 주목하면서 이를 근무평정 제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얻고, 승진하기 위해서는 교장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바로 현행 근무평정 제도 때문이죠. 제 얘기는, 교장한테 잘 보이는 교사보다는 학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교사가 좀 더 대접받는 게 바람직한 게 아니냐 하는 겁니다. (교사들이 평가의 노예가 되는 것은 저도 반대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현재도 근무평정 제도를 통해, 주로 교장에 의해 교사들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평가 자체를 아예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전교조가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교육을 막아내고 ‘참교육 운동’을 제대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문제에 대해 좀 더 공세적으로,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작성일 : 2009-02-24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