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진보신당 강원도당(11. 04. 01)

1. 노동자정치세력화! 여전히 유효한가.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실현할 것을 결정하며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는 듯 하였지만, 2008년 복수의 진보정당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과 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로 나뉘어져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땅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 노동자정치세력화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좀 더 솔직하게 표한하면 노동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정치적으로 뭉치자는 것인가? 정치란 국가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와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들 그리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란 바로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목표가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않될 것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목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국민)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자본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정당은 대중조직과 달리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결성된 조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권 내에서 정당활동을 표명한 이상, 선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적 의제를 선점하고, 알리고 그 과정에서 대중들로부터 선택받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 정책으로 대중들로부터 선택받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유는 진보정당이 집권하거나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경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대중들에게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민주노동당 시절, 20%대에 가까운 지지율을 대중들로부터 받은 경험이 있다. 이 결과물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권영길 의원은 100만표에 약간 못 미치는 기대이하(?)의 결과를 낳았지만, 이는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초석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유는 당시 권영길 후보는 TV매체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핵심정책인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를 알렸고, 이는 대중들에게 신성한 충격으로 다가 왔으며 민주노동당의 인지도 제고로 나타났고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우리에게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면 진보정당(진보진영)의 독자후보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때 악몽과 같은 비판적 지지론에 의해 권영길 당시 후보가 중도사퇴 하였다면 위의 성과들은 결코 얻을 수 없었으며, 진보정당의 존립문제도 매우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정당은 강령을 통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즉, 강령속에는 어떤 정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슬로건으로, 노동자, 기층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통 받는 노동자와 기층민중들을 위해 교육,의료,주택,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한 핵심정책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원내진출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의 생활이 파탄나고, 비정규직노동자로 전략하면서 개혁정권이라 자임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변해가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4대 입법개혁 중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올인하면서 민주노동당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사상의 자유를 막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할 악법이지만 이것이 정당으로서 모든 자원을 투여할 만큼의 중요한 사업이었는지는 생각할 대목이라 하겠다.

3. 일본사회당의 사례 - 조용한 죽음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최선두 주자였던 일본에도 유력한 진보정당이 존재했었다. 바로 일본 사회당이다. 이 당은 한때 자유민주당과 경쟁하며 집권까지 넘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군소 야당으로 전략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시작은 좋았다. 1945년 11월에 창당후 1년만에 사회당의 지지율은 41%를 기록했다. 일본의 새 헌법이 통과되고 나서 실시된 1947년의 첫 선거에서 사회당은 원내 제1당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당의 위원장은 보수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였고, 실력 없는 세력의 집권은 당내 좌우대립의 격화와 대중의 실망만 초래했다. 더구나 유일한 진보적 정책이었던 석탄산업 국유화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회당이 존립하고 또한 제1야당으로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은 단 하나, 바로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이었다. 총평은 선거기간중에 사회당의 자금과 조직동원을 떠맡았다. 사실 진보정당이 노동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 자체는 너무도 당연할 일이다. 다만, 그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가 문제이다. 이 점에서 일본의 사회당은 영국의 노동당보다 더 부정적인 사례였다. 일본의 노동자들은 당에 개별 입당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집단입당제도가 존재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총평의 간부들만이 사회당에 입당하고 당과 관계를 맺으며 국회의원으로 진출하였다. 비록 총평 간부들이 급진적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이렇게 의원과 의원지망자, 노조 간부들로만 이루어진 진보정당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발전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를 사회당도 뼈저리게 인식했다. 그러나 노동자에 직접 당을 뿌리 내리는 일은 제대로 시작되지 못했다. 여기에 종전이후 계속된 안보투쟁만 바라보았다. 결국 복지의 확대과정은 노동계급 형성의 계기가 되기는 커녕 자민당의 수혜층,지지층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나마 1980년대 들어 구조개혁론(안보투쟁)의 실패를 뒤늦게 인정하면서 새로운 강력적 문서를 채택한다. 그것은 ‘경제의 사회화’를 명시했다는 것이다. 그럼면서 사회당은 각종 선거에서 20%의 득표율을 넘어서는 재약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약진은 오히려 사회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사회당에 표를 빼앗긴 민사당과 공명당이 자민당과 유착하기 시작했고, 보수세력 주동의 정계개편에 시동이 걸렸던 것이다. 여기에 1987년 국철개혁이라는 구호 아래 철도 사유화가 단행 되면서 총평의 핵심인 공공부분 노조를 깨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민간 대기업 노조의 우경화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새로운 총연맹 렌고(일본노동조합연합)가 800만 조합원을 자랑하며 출범했다. 이 렌고가 보수중심의 정계개편을 주도하는데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던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리버럴 세력의 총집합’을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진보정당인 사회당을 해체하고 중도정당을 건설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는 진보정당이 근근히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의 ‘경제의 사회화’등은 이제 더 이상 누구로부터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의 사회당의 역사를 꼽씹어 보면서 진정으로 제대로된 진보정당을 건설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걸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놓고 그냥 흘러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4. 민주노총 더 강화되어야

진보정치에 있어서 민주노총의 의미는 중요하다. 진보정당에 있어서 민주노총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변혁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안정적인 배후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노동계는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법률로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는 설득력이 있지만,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분열의 조건,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으로서는 노동자의 단결과 강화를 위한 계획과 프로그램을 마련하여야 하며, 민주노총 스스로 조직적으로도 강화되고 조합원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딜레마가 정치의 영역에서도 존재한다. 복수노조를 진보양당의 존재와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배타적지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관점이다. 조합원들의 정치적 활동과 선택을 보장하고 합리적인 방식에 의해 합의되는 만큼의 정치적 행위를 대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중조직의 분열을 방지하고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높여가는 길일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 강원본부가 제안하여 시도하고 있는 지부별 토론회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동안 몇 번의 선거과정을 거쳐 왔지만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과 참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지역과 현장의 토론문화는 없었고 집행부와 진보정당 집행부 간의 결정만이 있었다. 그 결과 현장의 노동자들은 지도부에서 결정한 후보를 찍어 주거나 세액공제로 정치자금을 대 주거나 선거 막판에 캠페인에 참가하는 정도였다. 다행히 이번의 지부별 토론회는 그동안의 선거대응과 다른 방식이다. 그러나 다시 몇 사람들이 목청을 높이고 어렵사리 문안을 작성하고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회의자료로 컴퓨터 속에 보관된다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우리에게 요원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이번 4.27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총선,대선,지선을 준비하자.

5.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 - 지역강화

진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 또는 내 삶의 생활영역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나아 간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은 지역조직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지역에서의 보수세력은 통반장, 주민자치센터, 하물며 동창회,산악회, 친목계등 전방위적으로 뿌리깊게 박혀있다. 이렇게 공고하게 굳어 있는 보수의 조직을 허물어 뜨리지 못하면 집권의 길은 요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은 형식적 연대사업을 넘어 일상적 정치활동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지역활동가들은 노동의제를 넘어 지역의 일상적 활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곧 권력을 획득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동조합도 지역과 연대함으로써 노동의제를 지역으로 확대함은 물론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여야 한다. 노동조합의 지역연대사업으로는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정확한 실태파악을 위한 18시군 공동실태조사를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한다든가, 비정규직보호 조례제정 운동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캠페인을 진보정당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일, 노동조합에서 공모를 통한 지역사업에 기금을 출연하는 것 등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이 노동조합의 개별 활동만으로는 쉽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번에 지부토론회를 진보진영이 공동으로 치러냈듯이 이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사업과 노동조합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진보양당과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가지 방향의 일상적 공동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노동조합의 지역연대사업 둘째,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대중정치강연 셋째, 조합원을 상대로 한 일상정치교육 넷째, 후보자로 나서고자 하는 조합원이나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캠프 운영 등이다.

후보전술에 있어서는 민주노총에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1) 민주노총독자후보 2) 진보정당 단일후보 3) 진보진영단일후보 4) 보이콧(선거불참) 등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빠진 방안이 하나 더 있다. ‘지지후보선언’이란 방식이다. 민주노총에서 사퇴하지 않는 노동자후보를 원칙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 방식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현실여건을 감안했을 때 논의테이블에서 아예 빼는 것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3) 진보진영 단일후보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단일후보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및 조합원들의 참여라는 원칙에 가장 충실하지만 현실성이 있는가 하는 측면과 진보양당의 선거방침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쉽지 않은 선택이다. 2) 진보정당 단일후보는 기존의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즉, 진보정당에 정치활동을 위임하는 폐해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므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3) 진보진영 단일후보지만 4.27선거가 이미 코 앞에 닥쳐있으므로 지금 당장 채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지지후보선언’여부, 그 원칙과 기준 등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진보진영 단일후보의 선출방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논의를 해 두는 것이 차후의 총선, 지선을 공동으로 준비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진영의 세 주체가 각자의 후보를 발굴하여 경쟁방식을 통해 후보를 검증한 후 단일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출방식에서 복잡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보다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평조합원과 평당원들에게는 정치참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자, 현재의 합의와 공동실천을 바탕으로 그 다음 고개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논의와 실천을 다시 시작하다.

작성일 : 2011-04-04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