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에서 좀 떨어진, 송정 바닷가 솔밭에 아내와 매일 같이 산책하는 솔밭이 있다.

나는 그곳을 똘레랑스의 공원이라 이름 지었다. 그곳은 동부지방산림청에서 거의 이 십 여 년 출입을 통제 시켰다가 얼마 전에 철조망을 뜯어내고 출입을 허용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연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그곳 솔밭은 장마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어 올 때면, 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해 안의 명물인 해송이도 제법 자라나던 곳이다.

그곳에는 둥글레가 집단으로 서식을 한다. 처음에 낯이 익은 식물들이 떼로 몰려 있길래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아내의 요구에 몇 뿌리 케어와 가게의 화분에 심어 놓았더니, 등산을 자주 하는 아내 친구가 그 식물이 바로 둥글레라고 가르쳐 주어서, 그제서야 그것이 눈에 익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둥글레는 솔밭 곳곳에 그들의 세력을 적당히 유지하며 그곳 숲을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심심산중에 있어야 할 둥글레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 연유는 모르겠지만, 그곳 둥글레는 그들의 개체수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그곳의 환경의 아름다움을 모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잘 하고 있다. 둥글레의 개체수는 다른 식물들을 전혀 주눅들게 하지 않을 정도로, 비록 떼로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식물과 조화를 이룬다. 그 공원의 미덕은 유난히 아름다운 해송도 있겠지만,  둥글레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그곳에 암꽁 세 마리가 살고 있다. 가끔은 장끼가 날아 와 교미도 하는 눈치지만, 주로 암꽁 세 마리가 붙어서 같이 다닌다. 장끼와 교미를 할 때면, 주위에 아랑곳 없이 꽁 특유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친다. 그러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부리나케 호들갑을 떨며 날아 도망을 간다. 그러나, 세 마리 암꽁끼리 먹이 활동을 하며 소나무 사이를 돌아다닐 때는, 그렇게 유별나게 사람의 눈치를 보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는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나 보다. 동물들의 교미를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것 또한 이채롭다. 꽁들은 평소에는 암꽁들끼리 살다가, 발정기가 오면 장끼와 접촉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사람 처럼 결혼을 하면 죽을 때까지 붙어 살며 티격태격 하는 것 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교미 때마다 상대를  바꾸는 재미 또한 있을 거라고 추측하면서 그 놈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혼자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흘깃 옆 눈으로 흘겨보며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예전에 무덤도 몇 기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덤의 봉긋한 형태는 이미 사라졌지만 본관이 적혀 있는 묘지석이 두서너 개 보였다. 어느 묘지석에는 1970년 4 월 모일에 사망했다고 적혀 있길래, 무덤의 봉긋함이 30 년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산에 흔한 황토이기 보다 모래질이 많은 곳이기에 무덤이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무덤을 돌 보지 못한 후손들은 흉보기 싫었다. 현실을 살아기에도 벅찬 세상인데, 이승에 있는 조상들에게 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그곳은 무덤의 흔적이 곳곳에 있지만, 을씨년스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죽은 자의 영혼이 솔밭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이 들면 누구라도 미심쩍은 생각이 들 터. 그러나 그곳의 미덕은 죽은 자의 영혼 마저도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내가 똘레랑스라고 이름 붙혔던가.

똘레랑스 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홍세화 선생의 책에서이다. 똘레랑스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나는 한동안 프랑스를 동경했었다. 그리고, 일부 한국 진보세력에 대해 내가 왜 불만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고, 한국사회에서 이질적이라고 여겨지던, 내 진보적 의식이 수정하지 않고도 남에게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 것이 똘레랑스였다.

똘레랑스의 첫번째 의미는, 다른 사람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다. 즉, 상대방의 의견  사상을 존중하면서, 내 자신의 의견 사상을 인정받는 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미는, 특별한 상황(권력, 주로 공권력)에서의 혀옹되는 자유를 뜻한다.(원래 허용오차를 뜻하는 공학적 용어인데,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특별한 자유라는 뜻이 된 것이다.

첫번째는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 나와 남과 소수를 동시에 존중해 하고 포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두번째는, 권력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즉, 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되는 것도 아닌 한계자유를 의미한다. 거리에 아무 곳에서나 쓰레기를 버리는 그들이지만, 그래야 청소부들이 실업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똘레랑스 사회에 사는 프랑스인들이다.

소수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어 왔던 이 사회. 특히 작년 초에 동계올림픽 사찰단이 오던 날, 강릉시청 앞에서 후배와 둘이서 반대 시위를 하다가, 강릉시민들에게 맞아 죽을 뻔한 생각이 들면서, 똘레랑스는 한국사회에서 마치 나를 보호해주는 이념적인 방패막이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이 솔밭의 이름을 똘레랑스라고 갖다 붙힌 이유는 무엇일까?  동해안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솔밭이기에, 게다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솔밭 사이 산책로에서 동해의 수평선을 마음껏 쳐다보면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기에, 해송의 집단 서식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이 사이에 여러 가지 나무들이 해송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구색도 갖추어 주고, 둥글레 또한 오만하게 그들만의 세력을 미련하게 넓히려 하지 않고 다른 식물들을 인정해 주는 미덕 때문일까?

아! 혹시........

결혼 20 년 동안, 아내와 나는 앙똘레랑스였다. 나와 아내는 부부였고 아이 둘을 낳고 밤이면 한 이불 속에서 부둥켜 안고,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간에 앙똘레랑스였다. 그것은 나의 바람으로 절정을 이루었고, 아내는 급기야 마음의 병이 들고 말았다. 내 바람이 가시고 나서, 아내와 나는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이곳 솔밭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산책의 의미는 운동 보다도 서로간의 대화였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20 년 동안의 서로간의 대화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똘레랑스를 내 진보적인 의식의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나는, 그 동안 아내를 내가 가진 가장으로서의 권력으로 억압을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병들게 하였다는 것을, 깨달은 곳이 이곳 솔밭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 마리의 암꽁 중, 어느 놈이 교미하던 장끼의 진정한 아내일까? 혹시, 장끼는 이곳에 교미하러 오면서, 세 마리 암꽁을 교대로 즐기는 복 받은 놈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암꽁 세 마리는 서로 간에 질투는 하고 있을까? 갈 때 마다 세 마리가 사이좋게 붙어 다니는 것으로 보아, 질투는 하지 않는 것 같다. 혹시, 암꽁 세 마리가 장끼를 사이에 두고 질투를 하지 않는 것도 똘레랑스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진정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과거 20 년의 앙똘레랑스가 똘레랑스가 되어 남은 여생이 행복해지기를.

작성일 : 2008-05-30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