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사건과 지난 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 Ⅱ

길 후보의 출마와 당선이 의미하는 것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강원도당이 반성해야 할 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하다.

작년 5월 3일, 당원 봄소풍 때 폭력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때는 당기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강원도당 제2창당위원회는 가해자에게 ‘6개월 자격정지’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 처분을 내렸고, 가해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자발적 사과’를 권고했습니다. (참고로, 민주노동당 징계사례를 보면 당 공식행사가 아닌 사석에서 일어난 폭력사건-빰을 때리는 정도-에 대해서도 자격정지 2년[결정일자 2007.11. 4.]이 내려졌으며, 당 공식행사 뒤풀이에서 발생했던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폭력사건’에 대해서는 원심에서 제명[결정일자 2004.11. 1.], 재심에서 자격정지 4년[결정일자 2005. 1.24.]의 징계가 내려진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이수 등의 주문이 없었던 점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약 10개월간 피해자의 상처를 방치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도당 위원장 선거에서 후보 등록을 한 이후에야 피해자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사과문의 내용이 사실왜곡 및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포함하고 있어 피해자의 상처를 더욱 더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폭력사건(5.3사건)의 가해자는 75.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진보신당 강원도당의 초대 위원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진보신당 춘천지역 추진모임 대표였던 5.3사건의 피해자는 사건 발생 후 3일만에 탈당했고 지금도 당원이 아니지만, 그 사건의 가해자는 사건이 발생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강원도당의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는 강원도당의 정치역량이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길00 씨 말고는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당원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는 강원도당 당원들이 용서와 화해를 잘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고, 낙선운동그룹의 문제제기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5.3사건의 피해자는 비당원으로 남아있지만 그 사건의 가해자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강원도당의 위원장이 됐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알려주는 바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하다’는 것!! 선거는 끝났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실을 바늘귀에 제대로 끼우고 가’면서 강원도당의 정치역량을 강화할 수는 없었는가?

그 전에 먼저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선거 기간 중에 박00 당원께서 댓글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공인도 아니면서 공인임을 강요당하는 연예인들도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잠시 자숙하거나 일을 중단하거나 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출마하셔서 당선되시면 저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진보신당 강원도당 당원으로서 떳떳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즉, 길00 씨가 강원도당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절차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도의적 차원에서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한00 당원의 경우,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실을 바늘 귀에 제대로 끼우고 가야지 바늘 허리에 묶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며 길00 씨의 출마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고, 논란이 이어지자 ‘선거 연기론’을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즉, 길00 씨의 출마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우리, 아무리 급하더라도 차근차근 제대로 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길00 씨의 출마를 지지했던 사람들은-화해님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강원도당의 “취약한 정치역량”을 극복하고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정치에 파고들기”를 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길00 씨가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길00 씨가 도당 위원장을 하지 않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는 없었을까요? 길00 씨가 강원도당에서 평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요? “나는 길00가 죽어야 하는 것을 반대한다.”라고 선언했던 당시 전국위원 후보 중 한 명의 말처럼 그런 존재였나요? 평당원으로는 능력 발휘하기 어렵고, 위원장을 해야만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위원장에 출마하지 않고, 평당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당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당원들 속에서 검증받고, 그리고 늦긴 했지만 피해자에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를 함으로써 문제를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이번에는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성일 : 2009-06-27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