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먹거리 운동 로컬푸드>(2)들불처럼 확산되는 로컬푸드 운동

◇원주천 강변에서 열리고 있는 새벽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충남 연기군 한 초등학교에서는 30여명의 어린이들이 점심때 학교급식을 먹은 후 식중독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날 급식메뉴였던 장어양념튀김에 ‘카르보푸란’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카르보푸란은 농약이나 살충제 성분으로 사용되며 실험용 생쥐의 반수 치사량이 체중 1kg당 5∼14mg에 해당할 정도로 맹독성 물질이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문제의 장어는 지난 6월17일 경기도의 한 식품업체가 페루에서 수입한 것으로 11월22일 이를 구매한 연기군의 한 식품업체가 사고 당일인 25일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급식용으로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로 드러난 문제는 자녀들이 먹는 학교급식에서조차 안전한 먹을거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멜라민 파동과 올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역시 생명과 직결된 ‘식(食)’ 문제였기 때문에 파문이 컸다.

안전한 먹을거리 운동, 이른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이 운동은 ‘식(食)’에 대한 위험성이 커질수록 각광받는 셈이다.

■ 농업의 문제로까지 확대

로컬푸드 운동은 일차적으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나 가공식품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만들어지는 농산물을 활용하자는 비교적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단 인근 동네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는 것인 만큼 해외에서 한두달 걸려 오는 수입산들보다는 ‘신선도’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어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도가 생길 수 있고 여기에 친환경농산물이라면 더더욱 믿을 수 있어 주민들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로컬푸드 운동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소비자 영역을 넘어 농업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인스턴트로 대표되는 가공 음식들의 등장으로 식생활이 변했고 급격한 도시화와 농촌 인구 유출 등으로 농지면적이 감소, 식량자급률이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 이상기후와 농산물 생산비 증가, 다국적기업의 투기 행태 등으로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국가 중 26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쌀자급률은 95.5%에 이르고 있는 반면 밀 0.2%, 옥수수 0.7%, 콩 9.8% 등으로 쌀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5%대로 뚝 떨어진다.

이 때문에 한국은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지만 수입국들과의 거리상 유통기간이 길어 먹을거리의 질은 하락하게 되고 이에 따른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농업의 중요성과 ‘친환경농업을 통한 우리 농산물 생산’에 관심이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로컬푸드 운동은 농업 살리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미국, 캐나다 등 관련법 제정

세계 각국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브라질 등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안전한 먹을거리 운동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정부가 나서서 관련법을 만들어 시행했다.

미국은 1976년 공포된 미공법 94-463에 의해 농민과 소비자 간의 직거래를 합법화했으며 미 농무부에서는 농민과 지역주민들이 농민시장을 조직하도록 해 현재 약 4,000여개의 농민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또 2002년에는 농장법을 만들어 학교가 식사프로그램을 위해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구매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로컬푸드를 강제하는 법규는 없으나 연방정부와 주·시정부에서 ‘음식교육센터’를 짓고 이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2001년부터 농업과 먹을거리에 대한 미래 정책위원회를 구성,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을거리 전략’보고서를 내면서 2003년부터 지역생산자들의 보급을 늘리는 공공부문 먹거리 구매계획을 세웠다.

1999년 재정법을 통해 유기농 먹을거리 생산 증진을 선포한 이탈리아는 전체 학교의 66%가 적어도 일부의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완전 유기농만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학교는 1997년 70개소에서 2003년 561개소로까지 늘어났다.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으로 유명한 일본도 이미 1960년대부터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제휴가 이루어져 1999년 신농업기본법과 ‘식육(食育)’기본법을 제정한데 이어 2003년 농림수산성이 지산지소 추진에 관한 정책제안회를 개최하면서 전국적으로 지산지소 운동이 전개됐다.

■ 국내에서도 기틀 마련

최근에는 우리나라 정부와 자치단체들 사이에서 로컬푸드 운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각 자치단체마다 특성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최근 농업농촌기본법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으로 개정, 제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농업인 및 소비자의 책임 규정 사항을 담았고 특히 제7조에는 로컬푸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에 대해 규정해 놓았다.

이에 따라 경기도 양평군이 2006년부터 친환경농업 인프라를 구축, ‘물맑은 양평’이라는 지역 친환경농산물 브랜드를 만들었으며 유통사업단을 구성, ‘농가는 생산을, 자치단체는 유통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로컬푸드 운동을 전개 중이다.

특히 이곳은 관내 초·중·고 45개교에 친환경농산물 급식을 공급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는 2003년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지원조례를 시장 발의로 제정한 후 122개 전 교육시설에 친환경 급식이 시행됐고, 급식 재료의 90% 이상을 지역에서 공급한다.

반면, 충남 아산시의 경우 생산자 중심의 먹을거리 운동이 전개돼 2000년 친환경농가들이 100% 출자해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을 구성, 친환경농산물 생산 및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추진했다.

이후 아산시의 지원을 받아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콩을 가공 두유와 콩기름, 두부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육가공 회사인 (주)푸른들 식품 설립도 추진 중이다.

■ 시민사회·농업인 중심

도내에서는 원주시가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가장 먼저 안전한 먹을거리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수십년간 쌓아온 시민사회운동의 기반과 상지대의 친환경농산물 사용 등으로 로컬푸드 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원주에서는 상지대 국제친환경유기농센터와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또 이들을 포함한 12개 단체가 소속돼 있는 원주협동조합협의회 등이 중심이 돼 ‘로컬푸드 지원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 지원과 원주지역공동체 실현,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 등을 실시할 방침이다.

춘천시는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춘천지역고용포럼’이 모태가 돼 친환경농업인연합회를 결성한데 이어 올 6월 춘천지역먹거리순환위원회를 창립,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후 7월부터 소비자회원 직거래 시범사업을 추진, 약 40가구에 친환경농산물이 공급되고 있고 지난달 춘천친환경농산물유통사업단을 꾸려 12월1일부터 실질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최근 로컬푸드 운동이 확산되는데 대해 춘천지역고용포럼 이강익 정책실장은 “직거래를 통한 지역 농민의 소득 증진과 건강한 식자재 식습관을 통한 지역사회 구축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특히 도내에서는 농촌지역사회 유지와 함께 도농통합형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지대 국제친환경유기농센터 우영균 교수는 “로컬푸드 운동은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를 동시에 고려해 농민과 소비자의 신뢰 속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게 되는 것”이라며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 연구기관, 자치단체의 연계 속에서 종합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원일보 / 유병욱기자 newybu@kw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작성일 : 2008-12-01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