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도칼럼] 어지러운 봄

▲ 시인 유승도 유승도  1960년 충남 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나의 새’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과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를 펴냈으며, 영월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서 자급자족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동백꽃(생강나무꽃)이 피는 것을 보니 봄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만 아직은 추운 듯, 꽃도 확연한 노란 빛이기보다는 연둣빛을 띤 노란색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이곳의 농부들은 감자를 심기 위해 밭갈이를 한다. 때에 맞춰 심고 김매기를 하는 것이 농부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농부라고 하기에도 거시기 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시기 한 나는 농부들을 바라보며 나도 이제 밭갈이를 해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잡는다. 하루나 이틀이야 괜찮지만 일주일 정도 늦어진다면 지체한 날짜의 몇 곱에 해당되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커나가는 풀들과 날씨 변화 때문에, 들어가야 할 품과 그 결과로 얻을 수확 사이에 많은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러운가? 흘러가는 세상일이야 남의 일로 받아들이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농부들인데 나는 거기에서도 예외인 것이 분명하니 아무래도 농부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할 그런 존재임이 분명하다. 하긴 이런 글을 쓴다는 측면에서도 나는 주위의 농부들하고는 다르다. 뭐 꼭 사람이 같아야 할 일은 없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간에도 하는 짓이 같아야 할 이유 또한 없다. 농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공동체니 이웃사촌이니 어쩌니 하지만 곰곰 살펴보면 이미 농촌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허물만 남은 실체 없는 허깨비다. 이웃사촌이라는 것도 끼리끼리 조직한 친목회 같은 이익단체에서나 그 희미한 모습의 일단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까 말까다.      묵묵히 제 일을 하는 농부들이라는 말 속의 ‘제 할 일’ 중에는 선거에 참여하는 일도 포함돼 있는 것인지, 때마다 벌어지는 선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곳 농부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런 산골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일까?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농촌과 농업을 말살하려한다는 비판이 드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체결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기업의 법인세를 내리고 부가가치세를 올린다는 것도 그렇고,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를 부르짖는 것도 그렇고,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것도 그렇고, 영어몰입 논란이 알려주듯이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겠다는 교육정책도 그렇고, 북한과 다시 냉전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도 그렇고, 백골단을 부활시키겠다는 것도 그렇고, 대선이나 총선에서 농민과 농업을 위해 그럴 듯한 정책 하나 내놓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 무엇 하나 농민과 농촌에 이롭다거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은 한나라당 출마자들을 찍는다.     어제도 집에 놀러온 마을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 나는 또 답답함을 느꼈다. ‘북한에 왜 쌀을 퍼주느냐’는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도 북한에 돈을 퍼주는 것이고 개성공단도 북한에 돈을 갖다주는 것이니 다 ‘퍼주기’라 한다. 우리도 어려운데 왜 북한에 퍼주기를 하냐고 한다.     도시민이나 상공업자나 공무원 하다못해 어민이 얘기를 한다면 그러려니 할 일이다. 한데, 농민이 북한에 쌀을 퍼준다고 화를 내니 어찌된 일인가? 앞으로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쌀농사를 짓지 말라며 국가에서 지원금까지 주는 시대다. 쌀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농업을 포기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그만큼 쌀은 농업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쌀을 갖다주는 것을 말릴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국가로 하여금 어떻게든 쌀을 소비하게끔 하는 것이 농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다.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며 더 주라고 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각종 업종단체들은 자신에게 이로운 정책을 펴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농민단체와 농민들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어찌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을 하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마을 사람들의 이와 같은 말은 어디선가 많이 외치는 말이다. 바로 ‘조중동’이라고 하는 이 나라 3대 신문과 한나라당에서 줄기차게 외치는 ‘북한 퍼주기’라는 용어다. 그들의 말을 심심산골의 농부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이곳에서 10년을 살면서 보니 마을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은 이런 저런 것이다’라고 자신만의 고정관념으로 스스로를 무장시킨 채 다른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현상들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저런 세상 흐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법인세나 종합부동산세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모른다. 법인세를 내리는 대신 부가가치세를 올린다는 것이, 기업은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에 자신들이 사고파는 물건에 붙이는 세금은 올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주머니 돈을 더 가져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장통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가 얘기하던 ‘시장경제’의 그 시장이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재래시장인줄 알고 표를 던졌다는 농담같은 사실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과 주식활황에 힘입어 ‘있는 자’들은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문제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하층 노동자들과 서민층으로 분류되는 이 땅의 하류계층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 것이다. 나라 경제를 수치상으로 보자면  일인당 국민소득은 이만 불을 넘어섰고 나라 재정도 흑자로 돌아섰다. 나라의 경제성적표만 보면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없는 사람들은 더욱 어렵게 됐으니 어찌된 일인가? ‘경제가 문제’라고 할 때의 경제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가지지 못한 자들의 경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니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그들을 살리는 경제정책을 쓴다는 소리여야 맞다. 한데,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정반대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즉,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경제는 있는 자들을 지금보다 더 잘살게 하기 위한 경제지 없는 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한 경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오해 아니면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까? 마을 사람들은 책도 읽지 않고 인터넷 검색이란 것도 못하거나 하지 않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검색해서 읽는다. 방송은 주로 드라마만을 즐겨본다.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방송 종사자들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기보다는 친화적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갖춘 프로그램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시간대는 농부들이 내일의 일을 위해 잠에 들어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을 비롯한 자칭 ‘우익’이자 ‘보수’인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가? 지난 정권 때 심심치 않게 보여주었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내 주위의 농부들만큼이나 그들도 이상하다. 나라의 우익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시위를 하는 자리에 다른 나라의 국기가 등장하여 물결을 이루며 출렁댄다. 내가 가진 상식 속의 우익이라면 국가주의자이거나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다른 나라의 국기를 들고 나와 흔들며 시위를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우익이다.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은 또 있다.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일반 국민들에 비해 군대에 가지 않은 비율이 월등히 높으며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예 또한 많다는 것이 그것이다. 완전한 물구나무서기 현상이다. 이건 우익이라고 할 수 없는 집단이다.  티베트 독립 시위의 중심에 서있는 달라이 라마는 홍콩이나 마카오 같은 특별한 자치를 요구한다고 한다. 불교를 바탕으로 한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것이 독립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티베트의 유혈사태를 접한 한국인들 중에는 동정심을 표하는 사람도 있고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중국 당국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동정이나 분노보다는, 한국인은 티베트인보다 뭐가 더 나은 것일까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다.     중국에 복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독립국이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과연 한국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논의해봐야 할 상황이다.     지금의 문화 속에서 도대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문화나 문학 예술을 해석하는 틀만 보아도 서양 학자들의 이론이 아닌 스스로의 독특한 비평 이론이나 형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서양에서 무슨 이론인가가 나오기만 하면 그것을 곧바로 수입해서 마치 자신이 세운 논리인 듯 사용하기 바쁘다. ‘전통문화’라는 것이 한국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이 땅의 주류문화가 아니다. 큰 흐름에서 밀려나 한쪽에서 겨우 그 모습만을 유지하며 힘들게 흐르는 실개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한국문화라고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 모두를 통틀어서 문화라고 한다면 모를까 한 부분 그것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켜 ‘이것이 이 집단의 문화요’라고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과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자기 것이라고 떳떳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영토 개념의 국토 밖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국토도 이 나라의 집권세력이 제 마음껏 파헤치려 하고 있다. 시멘트로 바르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국토를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한국 국토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나마 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실상은 그것도 위태롭다. 강과 산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 조화로운 모습조차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다가온 총선이 끝나고 한나라당이 과반의 의원수를 확보한다면 한반도 대운하라고 명명된 국토 뒤집기가 곧바로 시행될 태세다. 이 땅의 백성들은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 과연 이 땅의 사람들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파기 시작한다면 곧 거대한 싸움판이 형성될 것이다. 싸움은 이긴 쪽에도 진 쪽에도 폭력의 후유증을 남긴다. 후유증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며 폭력의 순환 고리를 형성시킨다. 부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뭔가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앞을 막아선다. 이번 선거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또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다. 올해의 봄은 기어이 피와 함성이 터져오르는 봄날이 될 것인가? 아무래도 어지러운 봄날이다. 대운하 공사가 시작되고 의료보험까지 민영화되는 사태가 이어진다면 또 어찌할 것인가? 핵전쟁이 한반도에서 터지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당할 것은 당해봐야 하는 것인가? 당하지 않고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해보면 알긴 알까? 진정 알 때는 인류가 멸망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어지러운 봄날이다.

작성일 : 2008-05-13 12:47